존 베처먼 : 죄책감
존 베처먼(John Betjeman, 1906~1984)은 위트와 유머 그리고 영국의 문화와 풍경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소박하고 전통적인 영국에 대한 향수를 반영하고 있으며, 사회적 변화, 건축, 시간의 흐름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1972년부터 1984년 세상을 뜰 때까지 영국의 계관시인이었던 그는 전통적인 시 형식을 옹호하였고, 공적이고 시사적인 문제들을 가벼운 터치로 언급하였다. 고전 건축을 찬양하였으며 현대사회의 피상적이고 천박한 행태를 풍자하기도 하였다.
베처먼의 시는 하나의 ‘현상’으로 여겨졌다.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했던 그는 비평가들로부터도 찬사를 받았다. 그는 20세기 영문학에서 가장 높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작가들 중 하나였다. W. H. 오든은 자신의 시 ‘불안의 시대’를 그에게 헌정하기도 하였다. 특히 베처먼은 도시의 건물들이 황폐해 가는 것을 개탄하며 오랜 세월 동안 가치를 지니는 건축물을 유지 보존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는 사라져 가는 어린 시절의 장소들, 건물들 그리고 기념물들에 대해 아름다운 글들을 남겼다.
영국인들의 삶에 대한 베처먼의 부드러우면서도 예리한 통찰은 장소와 정체성에 대한 글을 쓰는 많은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다음에 소개하는 그의 시 ‘죄책감’(Guilt)에서는 도시의 황폐한 삶과 그에 따르는 허위와 위선에 대한 죄책감이 담담하지만 통렬한 은유로 묘사되고 있다.
죄책감
시계는 탑 안에서 얼어붙었다.
타는 냄새가 나는 안개가
런던의 거리를 지옥으로 만드는
차량들을 덮었다.
호젓한 발걸음 소리는
주변의 정적을 한층 짙게 한다.
나는 희망이 없다, 믿음도 없다.
나는 두 개의 삶, 때로는 세 개의 삶을 산다.
나와 함께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내가 사는 삶들은 삶을 죽음으로 만든다.
내 덕이 모자라는 것을 알고
나는 내 등을 토닥인다.
독선의 가슴받이를 하고
발에는 자만의 구두를 신고,
내 안의 충동이 줄어들기 전에
서둘러 은신을 위해 떠나간다.
어딘가, 어느 곳에선가 불이 타올라
나를 끌어내어 밤으로 이끈다.
그것은 얼음처럼 얇고 선명하게 반짝이며
나를 워털루 역으로 데려가
안타까운 서리(Surrey)*로 향하는
따뜻한 전차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수정이 걸린 소나무 숲들이
철로 옆에 죽은 듯 조용히 서있다.
* 서리는 런던 근교에 위치한 전원 지역으로 구릉, 역사적 건물, 와인 농장 등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Guilt
The clock is frozen in the tower,
The thickening fog with sooty smell
Has blanketed the motor power
Which turns the London streets to hell;
And footsteps with their lonely sound
Intensify the silence round.
I haven't hope. I haven't faith.
I live two lives and sometimes three.
The lives I live make life a death
For those who have to live with me.
Knowing the virtues that I lack,
I pat myself upon the back.
With breastplate of self-righteousness
And shoes of smugness on my feet,
Before the urge in me grows less
I hurry off to make retreat.
For somewhere, somewhere, burns a light
To lead me out into the night.
It glitters icy, thin and plain,
And leads me down to Waterloo-
Into a warm electric train
Which travels sorry Surrey through
And crystal-hung, the clumps of pine
Stand deadly still beside the line.
멈춰버린 시간, 안개와 매연으로 덮인 도시의 거리는 외로운 발걸음 소리만 정적을 뚫고 들려온다. 사라진 희망과 믿음, 자신의 본모습을 잃고 이중, 삼중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삶 속에서 시 속의 화자는 곁에 있는 사람들마저 생기를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본다. 그렇게 상실의 고통 속에서 무기력한 자신을 도닥인다. 독선과 자만과 충동에 사로잡힌 그는 자신만의 은신처를 찾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밤, 그는 워털루에서 서리 행 전철을 탄다. 어디로 가야 할까. 거리에 선 나무들이 철로 주변에 죽은 듯 말없이 서있다. 황량하고 외로운 도시의 풍경이다. 그리고 화자는 그 안에서 순수와 이상과 소박함을 상실한 자신의 삶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존 베처먼의 대표 시집 : ‘그치지 않는 이슬’(Continual Dew, 1937) ‘몇 송이 늦 국화’(A Few Late Chrysanthemums, 1954) ‘시선집’(Collected Poems, 1958), 시집 외에도 그는 ‘사진으로 본 영국 건축사’(A Pictorial History of English Architecture, 1972)를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