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영국의 시인들(13)

톰 건 : 밤의 땀에 젖은 남자

by 최용훈

톰 건(Thom Gunn, 1929–2004)은 성(sexuality)과 우정, 인간관계에 대한 주제의 시로 유명하다.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 후 195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스탠퍼드 대학과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에서 강의하였고, 주로 미국에 거주하면서 30 여권의 시집과 수필집을 출간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시 작법을 바탕으로 지극히 현대적인 문제들을 그려냄으로써 그의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하였다. 특히 무법적인 모토사이클 클럽 ‘지옥의 천사들’(Hells Angels)이나 동성애, 마약 등의 문제를 시 속에 묘사하였다. 1980년대 그의 가까운 친구들이 AIDS에 감염되어 목숨을 잃자 톰 건은 그 상실의 아픔을 시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어린 나이에 겪은 부모의 이혼, 어머니의 자살 등은 그의 성적 정체성에 큰 영향을 기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동성의 연인과 함께 생의 대부분을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냈으며 2004년 그곳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톰 건은 영국에서의 초기 시들로 문단의 호평을 받았으며 당시 그는 소위 ‘운동’(The Movement) 그룹의 일원으로 필립 라킨(Philip Larkin), 킹슬리 에이미스(Kingsley Amis), 엘리자베스 제닝스(Elizabeth Jennings) 등의 작가들과 교류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보다 느슨한 자유시 풍의 경향을 보였다. 톰 건은 특히 LGBTQ+ 관련된 시와 인간관계를 탐색하는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 LGBTQ+ :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퀴어(Queer) 또는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퀘스처닝(Questioning)의 약자.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이 전통적인 이성애나 남녀 이분법에 국한되지 않는 성소수자 전반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


밤의 땀에 젖은 남자


나는 서늘함에 잠에서 깬다.

열기 가득한 꿈 속에서 활개 쳤으나

그 잔재에 깨어난다.

땀과 끈적이는 침대보.


내 육체는 그 스스로의 방패였다.

상처 입어도, 치유되었다.


믿을 수 있었던 내 몸을

탐색하며 나는 성장했다.

더욱 강해지는 위험을

찬양하는 동안에도.


피부에 가해지는 도전 하나하나에

경이로움의 세계


나는 슬퍼할 수밖에.

주어진 방패는 깨어졌고,

마음은 쪼그라들어 서두르고,

육체는 초라하게 파괴된다.


제 자리에 똑바로 멈춰서

내 몸을 감싸 안는다.

마치 내가 겪을 고통에서

내 몸을 지키려는 듯이,


마치 손으로도

거대한 쇄도를 막아낼 수 있다는 듯이.


The Man with Night Sweats


I wake up cold, I who

Prospered through dreams of heat

Wake to their residue,

Sweat, and a clinging sheet.


My flesh was its own shield:

Where it was gashed, it healed.


I grew as I explored

The body I could trust

Even while I adored

The risk that made robust,


A world of wonders in

Each challenge to the skin.


I cannot but be sorry

The given shield was cracked,

My mind reduced to hurry,

My flesh reduced and wrecked.


I have to change the bed,

But catch myself instead


Stopped upright where I am

Hugging my body to me

As if to shield it from

The pains that will go through me,


As if hands were enough

To hold an avalanche off.


한 때 우리는 AIDS(후천성 면역결핍증)를 천형(天刑)이라 불렀다. 하늘의 형벌. 인간의 죄, 인간의 어리석음에 노한 하늘이 내리는 가혹한 형벌. 중세의 흑사병, 현대의 코로나 바이러스도 신의 형벌이라 여겨졌다. 수메르의 길가메시(Gilgamesh) 서사시, 힌두교의 성전 베다(Vedas), 기독교의 성경에 공통으로 묘사된 천형은 대홍수였다. 하지만 인간 모두를 쓸어버릴 듯한 그 신의 분노는 완전한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길가메시에서는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 베다에서는 마누(Manu), 성서에서는 노아(Noah)가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천형이라 불리는 재난은 종말의 선언이라기보다는 인간에게 보내는 신의 엄중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위의 시는 AIDS로 죽어간 시인의 친구들을 위한 조시(弔詩)이기도 했다. 쾌락의 꿈속에서 깨어난 화자는 그 환락의 찌꺼기 속에서 깨닫는다. 한 때 모든 것을 이겨낼 것 같았던 육체는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를. 이제 방패는 깨어지고, 서두름과 비탄만이 남아 후회 속에 보내는 마지막 순간, 그때에도 고통에서 벗어나려 움직일 수 없는 몸을 끌어안고 손을 내 젓는다. 밤의 땀에 젖어 눈물짓는 나약한 인간은 그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신의 경고를 깨닫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톰 건의 대표 시집 : ‘밤의 땀에 젖은 남자’(The Man with Night Sweats, 1992), ‘몰리’(Moly, 1971)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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