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영국의 시인들(9)

루퍼트 브룩 : 병사

by 최용훈

루퍼트 브룩(Rupert Brooke, 1887~1915)은 1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전쟁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시들은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기 전인 전쟁 초기의 낭만적인 이상주의를 묘사하고 있으며 조국에 대한 헌신의 결의로 가득 차 있다.


루퍼트 브룩은 찬사와 비난을 함께 받은 시인이었다. 준수한 외모에 매력적이고 재능 있던 그는 1915년 27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 이미 국민적 영웅이었다. 애국적 정열과 우아한 서정성으로 가득 찼던 그의 시는 아직 다가올 두 차례 세계대전의 파멸적 영향을 알지 못했던 영국에서 큰 호응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1차 대전이 끝난 뒤 브룩의 이미지는 훼손되기 시작했다. 평론가들은 그의 시가 어리석을 정도로 단순하며 감상적이라고 비난을 퍼부었고 그의 서정성은 현실의 냉엄함에 대한 무지의 소산으로 치부되기도 하였다. 그의 이른 죽음은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아도니스’라 불리던 그의 이미지를 고착시켰지만, 그의 사후에도 그는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헨리 제임스(Henry james) 같은 작가들의 찬양을 받았다. 브룩은 1차 대전 이전 영국의 분위기와 특징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전쟁 시인으로서 브룩의 명성은 윌프레드 오웬(Wilfred Owen)과 같은 강력한 시인에 의해 가려지기는 했지만 20세기 초반 전쟁 시에 대한 인식과 작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루퍼트 브룩의 대표 시 : ‘병사’(The Soldier, 1914), ‘죽은 자들’(The Dead, 1914), ‘전쟁 소네트’(War Sonnets from ‘1914 Poems’), ‘위대한 연인’(The Great Lover, 1912)


병사


내 죽으면 이것만 생각해 주오,

영원한 영국의 땅, 낯선 들판

어떤 모퉁이, 그 풍요의 땅에

더욱 풍요로운 티끌로 묻히리라는 것을,


영국이 낳고, 기르고, 성숙하게 했으며

사랑할 꽃과 거닐 길을 주었던,

영국의 공기를 숨 쉬고, 강물에 씻기고,

고향의 햇빛에 축복받은 영국의 몸임을.


그리고 생각해 주오, 모든 악을 벗어버린 이 심장,

영원한 정신 속 맥박이 어딘가에서

영국이 알려준 사상,

그 모습과 소리, 그 시절처럼 행복한 꿈들,

친구에게 배운 웃음과

평화로운 마음속 고요함을

영국의 하늘 아래서 되살리고 있음을.


The Soldier

Rupert Brooke


If I should die, think only this of me:

That there’s some corner of a foreign field

That is for ever England. There shall be

In that rich earth a richer dust concealed;


A dust whom England bore, shaped, made aware,

Gave, once, her flowers to love, her ways to roam;

A body of England’s, breathing English air,

Washed by the rivers, blest by suns of home.


And think, this heart, all evil shed away,

A pulse in the eternal mind, no less

Gives somewhere back the thoughts by England given;

Her sights and sounds; dreams happy as her day;

And laughter, learnt of friends; and gentleness,

In hearts at peace, under an English heaven.


오늘날 애국이라는 단어는 진부하게 들릴지 모른다. 집단주의나 극단적 민족주의의 선언쯤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조국을 위해 내어놓을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한스럽다.”는 외침은 집단의 광기에 빠진 어리석은 인간의 만용으로 여겨지고, 무언가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함의를 지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개인주의가 들어선다.


‘인도로 가는 길’(A Passage to India, 1924)의 저자인 영국 소설가 E. M. 포스터(E. M. Foster)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만일 내가 조국과 친구 둘 중 하나를 배신해야 한다면, 나는 조국을 배신할 용기가 있었으면 한다.” 그의 이 말은 민족주의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개인의 존엄성과 인간적 관계가 더 가치 있는 것이라는 그의 믿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국가나 대의명분과 같은 낱말은 압제의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보았으며 그것을 우정과 같은 본질적인 유대와 대비시키고 있다.


이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요구받을 때, 우리는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그 어떤 가치도 개인의 존엄성과 실존적 의미에 앞설 수 없다고 믿을 것인가? 아니면 집단의 가치와 생존이 개인으로 존재하기 위한 필수적 요건이라 여길 것인가? 아마도 이는 아주 오랫동안 논쟁의 주제로 남게 될 것이다. 루퍼트 브룩은 인류 최대의 전쟁 초기에 여전히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애국심을 찬양하고 있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이름 모를 땅 한 구석에 기꺼이 묻힐 것이고, 자신을 있게 한 영국이라는 땅, 그 하늘 아래서 영원한 안식과 기쁨과 평화를 누릴 것을 기원하고 있다. 그의 서정성과 헌신의 맹세는 찬양을 받았다. 허지만 전쟁이 깊어지고 무고한 수많은 생명들이 헛되이 짓밟혀갈 때 그의 낭만과 이상은 허물어진다. 티끌로 묻히는 영웅적이고 서사시적인 환상은 혹독한 현실의 고통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벌집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벌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격언을 여전히 십계명처럼 되뇌고 있을 것인가. 분명한 것은, 개인의 삶은 낭만적인 이상주의만으로는 살아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그래서 영원히 내가 속할 땅과 그 위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소중한 것 아닐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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