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십니까?

한용운 : 당신을 보았습니다

by 최용훈

당신을 보았습니다

한용운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려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아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貞操)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化)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 지내는 연기(烟氣)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I Saw You

Han, Yong-un


Since you went away from me, I have never forgotten you.

That’s not for you but for me.

With no land for plowing and sowing, I have no harvest.

I went to a neighbor to borrow some barley or potatoes for supper, and he told me ‘A beggar has no personality and a man without personality has no life. So to help you is a sin.’

The moment I turned back, I saw you in pouring tears.


With no home and for some other reasons, I have no identification.

A general despised me saying, ‘A man without an identification has no human right, so you, with no human right, have nothing to do with any virtue.

After defying him, I felt my anger turn into sorrow to myself. Then, I saw you.

Ah, I realized every ethics, moral, and law is nothing but fumes to worship a sword and gold.

When I hesitated as to whether I get eternal love, paint the first page of human history in ink, or drink wine, I saw you.


만해 한용운 선생이 보았던 ‘당신’은 누구였을까? 절망 가운데 의존해야 할 절대자였을까? 아니면 피 흘리고 누운, 잃어버린 나라였을까? 아니면 땅도 수확도 인격도 생명도 없는 무기력 속에 한 줄기 빛을 던져줄 사랑하는 누구였을까? 시는 지극히 노골적이다. 나라 잃고, 인격도 정체성도 누구의 도움도 없는 그는 이제 분노도 할 수 없는 슬픔 속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인다. 윤리와 도덕과 법마저도 권력과 물질에 봉사하는 것이라면 세상의 무엇에 의지할 수 있을까. 그를 본 시인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사랑과 역사와 만취의 흔들림 가운데 무엇이 그의 선택이 될까? 잃어버린 조국을 넘어 상실된 인간성에 대한 한탄이 서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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