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프레드 오웬 : 아름답고 고귀한 것
윌프레드 오웬(Wilfred Owen, 1893–1918)은 20세기 가장 유명한 전쟁시인이었다. 그는 뚜렷한 사실성과 강렬한 감정으로 전쟁의 공포와 허무를 묘사하고 있다. 그의 시들은 전쟁의 생생한 이미지를 통해 반전감정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1차 세계대전에 관한 최고의 영시를 쓴 작가로 평가되고 있는 오웬은 그의 거의 대부분의 시를 1917년 8월부터 1918년 9월까지의 일 년 남짓한 시기에 발표하였다. 1918년 11월 그는 정전 선언이 있기 불과 한 주 전 작전 중에 전사하였다. 그의 생애 중에는 단지 다섯 편의 시만을 발표했을 뿐이고 대부분의 시는 사후에 출간되었다. 오웬은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그려냈고, 그 과정에서 영국의 시를 모더니즘의 단계로 이끄는데 기여하였다.
윌프레드 오웬은 사후 오랜 세월 동안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아왔는데, 특히 그의 시어가 보여주는 독창성과 힘, 그것들이 표현해 내는 울분과 연민, 혹독한 사실성과 전쟁의 공포에도 위축되지 않는 감각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C. Day Lewis, 1963 ‘윌프레드 오웬 시 모음집’ 서문)
1917-1918년 사이에 발표된 오웬의 시들은 영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전쟁 시로 기록되고 있다. 오웬의 영향력은 오늘날의 독자와 시인 모두에게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그의 시는 영어로 써진 가장 강력한 시로 여겨지고 있다. 다음은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어린 병사들의 참혹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죽어가는 젊은 병사를 위한 송가’라는 시이다.
아름답고 고귀한 것
무거운 짐을 진 늙은 거지들처럼 몸을 굽힌 채,
기침하는 노파처럼 무릎을 구부린 채, 우리는 저주를 퍼 부우며 진창을 걸었다.
끈질긴 불꽃에 몸을 돌려
우리는 먼 휴식처를 향해 길을 걸었다.
병사들은 잠에 취해 행진했고, 많은 병사들이 그들의 군화를 잃어버렸지만
피범벅이 된 채 절뚝거리면서 계속 걸었다. 모두가 절뚝발이였고, 장님이었다.
피곤에 절어 우리 뒤로 떨어지는
독가스탄의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가스! 가스다! 빨리, 병사들!-미친 듯이 더듬어
간신히 제 때에 꼴사나운 방독면을 썼지만
몇몇 병사들은 여전히 비명을 지르고 비틀거리며
불 속에 혹은 석회 속에 빠진 듯 버둥거렸다.
뿌연 유리창과 짙은 초록의 빛 사이로 희미하게 ,
마치 초록의 바다 아래에 있는 것처럼, 나는 그가 익사하는 것을 보았다.
내 모든 꿈속에, 나의 무력한 시야 앞에
그가 발버둥 치고, 헐떡이며, 숨이 멎은 채 내게로 돌진한다.
숨 막히는 악몽 속이라면 당신도
우리가 그를 던져 넣은 수레 뒤를 따라와
눈이 뒤집힌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거야
죄에 싫증 난 악마 같은 그의 뒤틀린 얼굴을.
당신도 들을 수 있을 거야. 흔들릴 때마다
그의 피가 거품으로 더럽혀진 폐에서 그렁대는 소리를.
암 덩이처럼 더러운, 약한 혓바닥에 난 치료할 수 없는 아픈 상처를
되새김질하는 쓰라린 그 소리를.
친구여, 그대는 필사적으로 승리에 매달린 아이들에게
결코 최고의 열정으로 말하지는 않겠지.
그 오래된 거짓말을 : 조국을 위해 죽은 것은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라고.
* 윌프레드 오웬의 대표 시집 : ‘감미롭고 아름다운’(Dulce et Decorum Est, 1917), ‘죽어가는 젊음을 위한 송가’(Anthem for Doomed Youth, 1917), ‘허무’(Futility, 1918).
전쟁만큼 처참하게 인간성을 짓밟는 것이 또 있을까? 내 생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20세기 초에 인류가 겪은 전대미문의 참혹한 세계 대전, 무려 1,300만 명에 달하는 군인과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총 3,000만 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낸 인류 최대의 전쟁을 겪은 것은 불과 한 세기 전이었다. 그리고 30년도 흐르지 않아 세계는 또 다른 전쟁을 겪게 된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크고 작은 전쟁을 겪지 않은 날이 며칠 되지 않는다니 이 정도면 인간은 가히 ‘전쟁하는 동물’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시인은 독가스탄에 죽어가는 전우의 모습을 본다. 방독면 안에서 보는 그의 모습은 마치 초록의 바다에서 익사하는 것 같다. 죄조차 지겨워진 악마의 얼굴, 뒤집힌 눈, 거품처럼 피를 품어내며 내는 그 끔찍한 소리. 그 모든 공포의 광경과 소리를 시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오웬의 시는 여전히 서정성을 잃지 않는다.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굽히고 비틀거리며 진창을 걸어가는 무리들은 전장(戰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삶의 치열한 전쟁터에서 깨지고 절망한 오늘의 우리 모습에 다름 아니다. 전쟁 시는 역사의 산물이고, 역사는 환상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칼바람이 부는 이 황량한 도시의 골목, 골목들에는 패잔병처럼 발을 끌고 가는 가련한 군상들이 넘쳐나고 있으니까.
20세기는 영문학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시인들이 배출된 시기였다. 모더니즘의 혁신을 이루어낸 T. S. 엘리엇에서 고백적인 탐구의 길에서 슬픈 종말을 맞이한 실비아 플래스까지 20세기의 시인들은 시의 세계에 지워지지 않는 발자취를 남겼다. 그들의 작품들은 시인들의 감정적 깊이, 기술적 숙련성, 인간 경험에 대한 탐색들로 해서 아직까지 읽히고, 연구되고 있다. 20세기의 영국 시인들 가운데 15인의 시인을 다룬 연재를 마치면서 그들이 그려내고 싶어 했던 세상을 엿보고 그 시절의 추억을 되짚어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