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한 망각

by 최용훈

행복은 마음에 달렸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걱정거리가 있는 한 행복을 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2000년 전 서양의 철학자들은 행복을 ‘아타락시아’(ataraxia) 즉 ‘마음의 평화’라고 정의했다. ‘무질서한 상태’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타락시아’(taraxia)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평화는 질서 속에 있고, 혼돈은 늘 불안과 두려움을 초래하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삶의 과정 속에서 인간은 결코 항구적인 마음의 평화를 이루고 살 수는 없다. 사소한 일에서 큰일까지 마음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일들을 겪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제 말다툼을 벌였던 회사 동료와 오늘은 어떤 말을 해야 하나?’ ‘감기에 걸렸다는데 아이의 열이 왜 쉽게 떨어지지 않는 거지?’ 벌어진 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뿐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건강 검진에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어쩌지?’ ‘일주일 뒤 신입사원 면접에서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큰일인데...’ 살면서 크고 작은 일들이 늘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다.


그러니 매 순간 행복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깨어있는 동안 내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나는 행복하다’라는 감정은 아주 짧은 한 순간의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행복은 그저 편안한 마음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19세기 철학자 니체는 ‘행복은 고난과 고통이 없음이 아니라, 고난을 극복하고 자신을 고양시킬 때 느끼는 정신적인 충일함과 생명력’이라고 정의한다. 단순히 어려움이 없음으로 느껴지는 감정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극복한 뒤에 느끼는 충족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더더욱 행복은 지속적일 수 없다. 충족감 역시 곧 사라지고 새로운 고난이 시작될 테니까.


가끔 나는 나의 행복한 순간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가운데 어떤 공통점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어렵잖게 내린 결론은 ‘상실’이다. 무언가 잃어버렸을 때, 무언가를 놓쳤을 때 나는 불행을 느낀다. 평생 해오던 일을 잃어버렸을 때, 수치심 속에 자존감을 던져버렸을 때, 재산을 잃고 건강을 잃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을 때... 그 무수한 상실 속에서 나의 마음은 언제나 방황하고, 결국 행복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래서 상실의 극복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상실은 죽음만큼이나 분명한 삶의 과정이다. 죽음 자체도 생명의 상실일뿐이니까. 살면서 겪는 수많은 상실 중에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다. 그것은 행복을 해치는 방해물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곧 나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내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결국 ‘함께’하는 것이고 세상 그 누구도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미국의 여성시인 엘리자베스 비숍(Elizabeth Bishop, 1911~1979)의 시에 ‘한 가지 기술’(One Art)이란 것이 있다. 그 시속에서 그녀는 '상실의 기술'이야기한다.


상실의 기술을 습득하기는 어렵지 않죠.

많은 것들이 상실될 의도로 가득 차 있어서

잃었다 해도 재앙은 아니랍니다.


매일 무언가를 잃어버리세요. 열쇠를 잃어버린 낭패감,

그로 인해 낭비한 시간들을 받아들이세요.

상실의 기술은 습득하기 어렵지 않아요.


더 많이 더 빨리 잃어버리는 법을 연습하세요.

장소와 이름과 가려했던 곳들,

무엇을 잃어도 절대 재앙은 아니랍니다.


그렇게 우리는 상실을 극복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상실은 결코 재앙이 아니라 삶의 당연한 과정일 테니까. 하지만 시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

당신을 잃는 것(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몸짓을).

거짓을 말하지는 않겠어요. 분명한 것은

상실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분명!) 당신의 상실은 재앙처럼 보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과 더불어 끝이 난다. 다시는 행복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상실의 고통을 겪는다. 마음의 평화는 영원히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행복은 순간에 있고, 그 순간은 잃어버린 모든 것에 대한 잠깐의 망각에서 온다는 사실이다. 부모나 배우자의 죽음도 심지어 자식의 죽음마저도 아주 잠시라도 잊히는 순간이 있다. 잃어버린 모든 것에 대한 상실감과 슬픔이 홀연히 사라지는 그 찰나의 경험은 삶을 유지하려는 마음의 면역체계이다. 그렇게 우리는 문득문득 상실을 망각한다. 그리고 행복에 대한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 행복은 순간의 마음이며, 결국은 고통의 망각이다. 상실을 잊음으로써 갖게 되는 짧은 마음의 평화, 그것마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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