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여성 시인들(1)

여성시인의 기원/ 에밀리 디킨슨

by 최용훈

여성 시인의 기원은 고대 수메르의 여인 엔헤두안나(Enheduanna)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300년경 수메르의 달의 신 난나의 제사장이었던 그녀는 인류최초의 여성 시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그리스의 사포(Sappho, 630~570년 BCE), 인도 베다에 등장하는 힌두교 사상가이자 작가들인 로파무드라(Lopamudra), 가르기 바차크나비(Gārgī Vāchaknavī), 마이트레이(Maitreyi), 중국의 탁문군(卓文君, Zhou Wenjun, 175~121 BCE), 왕의 후궁이었던 반씨유(Ban Jieyu, 班婕妤, 48-6 BCE), 로마의 술피키아(Sulpicia, 기원전 1세기 경) 등이 고대 문명권에 등장한 여성시인들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중세 유럽에서는 로마 가톨릭 베네딕트 수도원장이었던 빙엔의 힐데가르트(Hildegard of Bingen, 1098~1179), 14세기 이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사망한 크리스틴 드 피장(Christine de Pizan) 등의 여성작가들이 문학사에 이름을 올렸다.


17세기에는 미국의 여성시인 앤 브래드스트릿(Anne Bradstreet, 1612~1672)의 작품이 최초로 영국과 아메리카 대륙 모두에서 출간되었으며 17세기 후반 영국의 여성 시인 애프러 벤(Aphra Behn, 1640~1689)은 이후 버지니아 울프에 의해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한 최초의 여성작가로 평가되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서는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Elizabeth Barret Browning, 1806~1861), 브론테 자매(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 등 뛰어난 여성 작가들이 등장한다.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은 생전에 거의 작품들을 출간하지 못하였지만 그녀의 독특한 문체는 이후 세대의 시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20세기에 들어서 여성작가들은 꾸준히 문학계에 활동범위를 넓혀갔고, 인도의 암리타 프리탐(Amrita Pritam)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작가로서 기존의 문학적 규범에 도전하고 사랑, 전쟁, 여성적 경험 등의 주제들을 깊이 탐색하였다.


여성들은 언제나 시를 써왔으나 엔헤두안나, 사포와 같은 고대 여성시인들의 문학적 기여는 남성 중심의 문단에서 크게 조명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디킨슨이나 프리탐 같은 후대의 작가들에 의해 경계는 무너지고 여성작가들은 지속적으로 문학적 유산을 남김으로써 1960년 대 페미니즘 문학운동을 촉발하였던 것이다.


‘영미권의 여성시인’ 시리즈를 통해 19-20세기에 걸쳐 여성문학에 큰 족적을 남긴 12인의 영미 여성시인들을 살펴봄으로써 영문학과 서양문학에 미친 그들의 영향을 조망하고자 한다.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

미국의 여성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매사추세츠 주 애머스트라는 마을에서 1830년 12월 10일에 태어났다. 그녀는 한 신학교에서 1년 정도 공부를 한 것 이외는 모두 가정에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부친은 정치가였으며 한 차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남동생 오스틴은 법과대학을 마치고 변호사가 되었으며 평생 동안 누이인 디킨슨의 지적 동반자가 되었다. 특히 그의 아내인 수잔 길버트(Susan Gilbert)는 시인이자 뛰어난 편집인으로서 디킨슨과 깊은 교감을 나누었으며 그녀의 열렬한 독자이기도 하였다. 디킨슨은 생전에 시인으로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녀의 사후 수많은 시들이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수잔과 같은 주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디킨슨은 17세기 영국의 형이상학파 시인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성경의 계시록과 뉴잉글랜드 지역의 청교도적 분위기가 그녀의 시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디킨슨은 알프레드 테니슨(fred Tennyson)과 함께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과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 그리고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시들을 흠모하였다. 그녀는 동시대 시인이었던 월트 휘트만(Walt Whitman)의 시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당시 휘트만의 시집 '풀잎'은 부적절한 성적 표현으로 비난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시인은 지극히 미국적인 시의 지평을 연 작가로서의 위치를 공유하고 있다.


디킨슨은 다작 시인으로 수천 편의 시를 썼으나 주로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들어있거나 서랍 속에 묻혀있었던 까닭에 그녀의 생전에는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 그녀의 첫 시집도1890년 그녀의 사후 출판되었다. 디킨슨이 세상을 뜬 뒤 그녀의 가족들은 무려 1800여 편의 시가 들어있는 40권의 원고 뭉치를 발견하였다. 이 시들은 각기 다른 길이와 방향(심지어 어떤 것은 수직으로 표기되기도 하였음)을 지닌 다양한 대시기호(―)를 담고 있었다. 초기의 편집인들은 그녀가 사용한 대시나 주석들을 생략했지만, 이후 출판되는 그녀의 시집 속에는 그 다양한 대시 기호들을 엔-대시(en-dash, 2분 대시), 즉 한 자 크기의 대시로 일괄 표기하였다. 이는 인쇄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지만 그녀의 의도를 최대한 반영코자 한 것이었다.


디킨슨의 저작 순서도 1981년이 되어서야 정돈되었다. 디킨슨의 시들을 편집해 왔던 예일 대학교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The Beinecke Rare Book and Manuscript Library, Yale University)의 관장 랠프 W. 프랭클린(Ralph W. Franklin)은 디킨슨의 원고에 드러나는 증거들, 이를 테면 얼룩이나 펜 자국 등을 분석해 디킨슨의 시를 시대 별로 정리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많은 평론가들은 디킨슨의 시를 연대기적으로 기술하는 것보다 주제에 따라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시들이 모더니즘의 경향을 띄고 있었음에도 정작 모더니즘 작가들은 그녀의 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시에 대해 처음으로 경의를 표한 주요 작가들은 하트 크레인(Hart Crane)과 앨런 테이트(Allen Tate) 등이었고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엘리자베스 비숍(Elizabeth Bishop)을 필두로 다수의 시인들이 디킨슨의 시에 영향을 받게 된다. 신비평 운동(New Criticism)도 그녀의 시들을 현대의 정전에 올려놓는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디킨슨의 시는 처음부터 일반 독자들에게 커다란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개인적이지만 직접적인 시적 표현---이를 테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은 누구시죠?/ 당신 역시 아무것도 아닌가요?”(디킨슨의 시 ‘I’m Nobody! Who are you?‘)처럼 작가와 독자 사이의 즉각적인 연결성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녀의 폭 넓은 감정과 유연한 표현력은 그녀의 시적 천재성을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외국어로 번역된 그녀의 시들로 디킨슨은 사포(Sappho), 카틀루스(Catullus), 사디(Saʿdī), 소네트를 쓴 셰익스피어(Shakespeare),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 등과 견줄 수 있는 미국의 서정 시인으로 인정받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에 디킨슨의 시 가운데 자주 언급되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은 누구시죠?’라는 제목의 시를 소개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은 누구시죠?

에밀리 디킨슨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은 누구시죠?

당신 - 역시 - 아무것도 아닌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한 쌍을 이루겠네요!

말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떠벌릴 테니까요 - 아시잖아요!


무척 따분한 일이죠 - 무언가가 - 된다는 건!

다 드러내야 하겠죠 - 개구리 같이 -

제 이름 알리려고 - 기나긴 유월 내내 -

아첨 떠는 늪에 대고 울어대겠죠.


I’m Nobody! Who are you?

Emily Dickinson


“I’m Nobody! Who are you?

Are you – Nobody – too?

Then there’s a pair of us!

Don’t tell! they’d advertise – you know!


How dreary – to be – Somebody!

How public – like a Frog –

To tell one’s name – the livelong June –

To an admiring Bog!”


디킨슨은 평생 은둔의 삶을 살았다. 그녀의 대화 상대는 오직 가족들이었고, 친구들과는 편지만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그녀의 삶은 외로움으로 점철되었다. 그리고 56세가 된 어느 해 그녀는 쿠키를 굽다가 쓰러져 다시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녀의 삶은 오로지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시심을 글로 옮기는 것이었다. 자신의 시 속에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담아보려 했을지도 모른다. 철들고 난 뒤 평생을 매일처럼 시를 쓰던 그녀는 고독 뒤에 숨은 문학에의 열정을 살아서는 결코 인정받지 못했다. 그녀는 단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과 한 쌍을 이룰 누군가를 만들고 그와 비밀을 공유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알려지지 않을 은밀한 관계,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 성적 열정까지 모두 종이 위에 적히는 낱말 하나하나에 감추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알려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무심한 늪지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개구리처럼 차갑고, 속물적이고 야만적이기까지 한 사람들을 향해 시를 적는 자신의 내면적 모순과 갈등을 드러내 보인다. 인정받지 못하는 창작에의 고통은 오히려 그녀를 더욱 깊은 단절로 내몰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았던 그녀의 펜은 이후 그녀를 불세출의 작가로 남게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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