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모어, 유토피아를 꿈꾸며
디스토피아에 살다

유토피아-어느 곳에도 없는 곳

by 최용훈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는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이상향,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비롯된 그 이상적인 사회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거쳐 이태리 철학자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 그리고 영국 사상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뉴 아틀란티스’로 이어진다. 판사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도 법률가가 된 사람, 한 때 영국의 대법관 자리에 오른 토마스 모어는 사상가이며 정치가였다. 또한 확고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인문학자로서 당대 유럽 최고의 학자였던 에라스뮈스와 친교를 맺기도 했다. 그의 ‘유토피아’가 에라스뮈스의 ‘우신예찬’이라는 책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에라스뮈스는 그 책에서 어리석으라고 말한다. 어리석지 않으면 왜 결혼해서 가족을 부양하는 고통을 감수하는가. 어리석지 않으면 왜 가난한 시인이 되겠는가. 남들이 모두 ‘예’라고 말할 때 왜 굳이 ‘아니요’를 외치겠는가! 하지만 결혼을 통해 인류는 유지되고 아름다운 시로 마음의 위로를 얻어왔다. 그리고 ‘아니요’라고 말하는 비판적 사고를 통해 과학문명은 발전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토마스 모어는 어리석었다. 왕의 절대적 명령을 거부했던 그의 종교적 신념은 그를 죽음으로 내 몰았다. 선출된 하원으로 후에 하원의장이 된 그였지만 몰락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의 생애는 런던탑에 갇히고 결국 참수형에 처해짐으로써 막을 내린다. 그가 꿈꿨던 유토피아는 결국 지상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것일까?

유토피아는 ‘없다’라는 의미의 ‘ou’와 ‘장소’라는 의미의 ‘topos'가 결합된 단어이다. 즉 ’ 어디에도 없는 장소‘(A place to be found nowhere)라는 뜻이다. 모어가 자신의 책에서 이야기한 이상적인 정치체제는 한갓 꿈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꿈을 꾼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무언가, 가질 수 없는 그것을 동경하며 꿈꾼다. 그렇게 몽상가가 된다. 하지만 그 꿈이 있어 인간은 오늘의 문명과 문화를 이루었고, 물질적인 풍요와 놀라운 과학 기술의 진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의 유토피아는 단순히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만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이상향에서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또한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인문학적 가르침을 담고 있다. ’ 유토피아‘를 통해 모어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언급한다. 정치가의 책무, 아름다움보다는 고결한 품성, 사치로 꾸며진 외면의 위선, 법과 정책의 문제, 물질적 소유에 앞서는 정신적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 등 삶의 교훈이 되는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왜 그들이 당신을 왕으로 세웠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죠. 그들은 당신이 힘을 쏟아 그들의 삶을 더

편하게 만들고 그들을 불의로부터 보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일은,

당신이 아니고 그들을 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엄격히 말해, 양치기의 일은 자신이

아니고 양들을 먹이는 것인 것처럼 말입니다. “

“예쁜 얼굴은 남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겠지만, 그를 붙잡으려면 인품과 좋은

품성이 필요하다. “

“남들보다 더 좋은 양털로 만든 옷을 입었다고 자신이 남들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결국 그 멋진 옷은 양들이 먼저 입었던

것이고, 그 어떤 옷도 양의 옷 만할 수는 없으니까. “

“무서운 처벌을 내리는 대신 모두에게 생계의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누군가 도둑이 되어 그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무언가를 소유할 수 있다면 누구나가 부자이다 - 즐거움, 마음의 평화,

근심으로부터의 자유보다 더 큰 부가 무엇이 있을까?”


그의 이러한 철학적, 종교적, 인본주의적 믿음은 중세사회가 몰락하고 르네상스가 도래되는 변화의 시대에 자연스러운 사상이었지만 결국 이러한 믿음과 신념이 말년의 그를 비극적인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비극은 여전히 절대적이었던 왕권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된다.

영국의 장미전쟁(1455-1485)은 흰 장미를 문장으로 사용한 요크가와 붉은 장미를 문장으로 쓰던 랭커스터가 사이의 왕권 다툼이었다. 결국 요크가 출신의 폭군 리처드 3세를 죽이고 랭커스터 가문의 헨리 7세가 새로운 왕이 된다. 그는 왕이 되자 과거의 열정적인 성품에서 신중하고 사려 깊은 모습으로 변모한다. 그럼으로써 왕권의 기틀을 확고히 했던 그의 치세 하에서 토마스 모어는 첫 선출 하원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한다. 그리고 1509년 헨리 7세가 죽자 그의 아들 헨리 8세가 열 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이 시기부터 모어는 정치가로서 승승장구한다. 1510년 런던 부시장이 되고 시의 하원 의장을 역임한다. 1521년 기사 작위를 받고 헨리 8세의 측근이 되면서 정부의 유력자로 떠올랐으며, 외교관, 왕실 회계국 부장관의 주요 직책을 맡아 왕과 토머스 울지 추기경 사이의 조정자 역할을 하였다. 마침내 영국 의회의 하원의장이 되고 대법관이 된다. 그는 최고의 권력을 누리는 정치가였을 뿐 아니라 존경받는 학자이며 사상가였다. 하지만 그는 완고한 가톨릭교도로서 자신의 신앙을 위해 믿음이 다른 사람들을 탄압하기도 했다. 헨리 8세의 통치기간은 영국에서 종교개혁이 급속하게 이루어지던 때였다. 하지만 대법관이었던 그는 종교개혁을 부정하고 개신교도들을 박해했다.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을 '모든 이단의 우두머리‘로 칭하며 투옥하였고, 화형에 처한다. 하지만 모어의 이러한 믿음도 결국 세속의 절대 권력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한다.

헨리 8세의 왕비는 스페인 출신의 캐서린 공주였다. 하지만 그녀는 왕의 후사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였다. 딸을 하나 낳았지만 남편의 사랑을 얻지는 못했다. 왕은 캐서린 왕비의 시녀였던 앤 불린과 은밀히 정을 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헨리 8세는 로마 교황청에 캐서린과의 이혼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가톨릭의 교리가 이혼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의 압력으로 교황청은 왕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분노한 헨리 8세는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를 끊고 영국 국교회를 선언한다. 오늘날의 성공회이다. 캐서린 왕비는 런던탑에 감금되고 결국 사형에 처해진다. 이렇게 되자 로만 가톨릭의 절대적 신봉자였던 토마스 모어는 왕의 행동에 반발하고 그에게 대항한다. 앤 불린의 왕비 대관식에 불참했음은 물론 그녀를 앞장서서 비난한다. 하지만 그의 신념만으로 왕의 절대적 권력에 맞설 수는 없었다. 대법관 직을 사직한 그는 마지못해 앤 불린을 인정하는 서신을 왕에게 보냄으로써 가까스로 반역의 죄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1534년 그는 영국의 국왕을 영국 국교회의 수장으로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을 거부함으로써 투옥된다. 그는 “세속인이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다.”라고 선언하였고 마침내 참수형에 처해진다. 처형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온 군중들을 향해 모어는 “나는 왕의 좋은 신하이기 전에 하느님의 착한 종으로서 죽는다.”라고 외쳤다. 결국 헨리 8세 치세 하에서 권력과 영광을 누렸던 그는 자신을 총애했던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와 대립하던 앤 불린도 왕비가 된 지 3년이 못되어 간통죄를 저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니 세상사는 참 모를 일이다. 하긴 틴데일을 화형에 처할 때에 모어도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했을 테니까.

토마스 모어의 짧은 소설 속의 섬 이름이 유토피아이다. 주인공 히스로디스는 바다를 항해하다 우연히 한 섬을 발견한다. 그곳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에 빠져 5년의 세월을 보낸 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 섬을 알리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모어의 ‘유토피아’는 16세기 유럽인들의 신세계에 대한 동경을 그려내고 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을 발견하고, 선박의 발달로 지구 상의 곳곳에 새로운 정착지를 만들어가던 그들에게 있어 그 신세계는 꿈속에 그리던 완전한 세상,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그러한 이상향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회의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19세기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포기하고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세상, 인간의 모든 행위가 감시되고 제약되는 어둠의 세상을 새로이 그려냈다. 디스토피아(Dystopia)는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가상사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처음 사용한 말로 ‘나쁘다’는 뜻의 ‘dys'와 ’ 장소‘라는 의미의 ’topos'가 결합된 단어이다. 예를 들어 1949년에 출간된 소설 ‘1984’에서 조지 오웰은 국민들의 모든 행동들이 감시되는 전체주의 사회의 위험을 경고한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1939)도 미래의 과학이 초래할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그려낸다. 그것은 우리가 피해야 할 세계를 의미한다.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를 꿈꿨지만 그가 산 세상은 그와는 반대되는 디스토피아의 세상일 뿐이었다. 정치적 성공은 절대 왕정의 권력 앞에서는 그저 한갓 꿈이었을 뿐이었고, 종교적 신념은 다른 믿음의 자유를 억압하는 편견일 뿐이었다.

그가 죽은 후 400년이 지난 1935년, 토마스 모어는 로마 교황청에 의해 시성 되어 성인의 칭호를 얻는다. 이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정치가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한다. 그의 죽음은 순교였을까? 적어도 그가 꿈꾼 유토피아의 세상에서 만큼은 목이 잘리는 죽음마저 의미를 지닐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결심이 이루어지는 세상은 아직도 찾을 수 없는 곳, 유토피아로 남아있다.

“다른 어떤 덕보다도 인간에게 소중한 덕인 참된 인간성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근심을 덜어 줌으로써 그들의 삶에 기쁨과 즐거움을 선물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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