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셰익스피어가 여자였으면

“전 당신에게 인생의 모든 행복을 빚졌어요. “

by 최용훈

"내가 다시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껴요.

우리는 그 끔찍한 일을 다시 겪을 수 없어요.

그리고 이번은 회복될 수 없을 거예요.

환청이 들리기 시작하고, 집중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에 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려고 해요.

당신은 제게 가능한 가장 큰 행복을 선사했지요.

당신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어요.

..................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요.

저도 알아요. 제가 당신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제가 없다면 당신은 자신의 일을 돌볼 수 있어요.

당신도 알게 될 거예요.

전 지금 이것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잖아요. 읽을 수도 없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 당신에게 제 인생의 모든 행복을 빚졌다는 거예요.

당신은 제게 한 결 같이 인내하고 대단히 친절하게 대해 줬어요.

전 그걸 —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기를 원해요.

만약 누군가 저를 구할 수 있었다면 그건 당신이었을 거예요."

........................ 버지니아.

영국의 위대한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는 젊은 시절 두 번의 큰 정신 이상 증상을 겪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 후 겪은 정신적 고통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두 번째에는 자실을 시도했으나 미수로 그쳤다. 물론 크고 작은 정신적 불안증세가 평생 그녀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남편은 그녀를 위해 헌신했고, 그녀도 남편을 사랑했다. 그런데, 1941년 3월 28일, 강가로 산책을 나갔던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 뒤 그녀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서재에는 남편과 언니 앞으로 남긴 유서가 있었다. 혼자 남겨질 남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긴 사랑의 편지였다. 그녀는 허탈감에 무기력해 있었으며 환청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의붓오빠에게 당한 성적학대와 정신 이상 증세의 재발에 대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20세기 영국 문단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여성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당대에도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60년 대 말의 페미니즘 운동과 더불어 새롭게 조명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또한 20세기 초반의 모더니즘 소설을 선도한 인물이었다. 모더니즘은 예술에 있어 하나의 혁명이었다. 기존의 모든 예술적 관습을 송두리째 파괴한 모더니즘은 분명 예술의 전위(아방가르드, avant garde)였다. 음악에서는 선율과 화음이 무시되었으며, 미술에서는 원근법이 사라졌고 입체파,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미래파 등의 추상적 회화가 등장하였다. 건축에 있어서는 새로운 소재인 콘크리트와 판유리가 등장했고, 기하학적 모양의 건물들이 만들어졌다. 문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지적인 단일 시점이 무시되고, 직선적인 구성은 원형적인 구성이나 에피소드적인 형식으로 변화되었으며,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난 다양한 실험들이 계속되었다. 특히 소설에 있어서는 시간의 개념이 파괴되어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혼재되고, 외적 현실보다는 내면의 세계를 그렸으며, 의식 속에 떠오르는 다양한 개념과 연상을 무작위로 서술하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이 사용되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 모더니즘 소설의 선두주자였으며 그녀의 대표작 ‘등대로’(To the Lighthouse)는 최초로 의식의 흐름이 묘사된 작품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는 당대의 아일랜드 출신 영국 작가 제임스 조이스나 프랑스의 마르셀 프루스트에 견줄만한 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페미니즘 문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녀 자신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도에 맞서 싸운 페미니스트였다. 그녀의 시대에 여성이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울프 자신도 그러한 사회적, 관습적 장벽에 마주쳐 좌절했던 여성이었다. 그녀의 글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은 울프가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1928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한 강연 원고였다. 그녀는 이 글에서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방’과 ‘돈’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봉사하는 종속적인 존재일 뿐이다. 따라서 여성이 스스로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16세기 셰익스피어가 남성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시대 여성의 역할은 그저 집안에서 살림하는 행위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울프는 19세기에 이르러서도 여성작가들이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찾지 못하고 남성들이 만든 체제에 순응해야 했던 현실을 비판하고 ‘방’과 ‘돈’으로써 해결책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즉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인 ‘자기만의 방’ 그리고 스스로 호구지책을 세울 수 있는 수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0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울프의 이 꿈은 실현된 것일까? 오늘날의 여성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독립적인 여건을 얻을 수 있게 되었는가? 아직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호하다.

울프의 작가로서의 삶은 반드시 고통스러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녀는 평생을 정신 질환과 그에 따르는 공포심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유명한 전기 작가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이미 2남 1녀를 둔 미망인과 결혼하였다. 그리고 재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다시 2남 2녀를 두었는데 울프는 그중 둘째 딸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배 다른 형제들과 함께 살아왔다. 13세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그녀는 의붓오빠들로부터 심각한 성적 학대를 받았으며 이는 그녀의 마음에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는다. 아내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졌던 아버지마저 10년 뒤 세상을 뜨자 울프의 친형제들은 의붓 형제들과 갈라서 독립한다. 그 후 잠시 평화로운 생활을 했던 그녀는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해주었던 친오빠 토비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또다시 깊은 절망에 빠진다. 그는 울프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한 사람이었다. 울프에게는 몇 살 위의 친언니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의 성적학대를 이겨내고 성공한 화가로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울프는 그런 언니에게 묘한 경쟁심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울프는 오빠 토비의 친구였던 두 살 연상의 레너드와 결혼한다. 그는 유태인으로서 캠브리지에서 공부하였고 지극히 온화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와 결혼한 후 레너드는 아내의 예민한 성품을 받아들이고 그녀를 위해 헌신한다. 결혼한 이듬해 울프는 처녀작인 ‘출항’을 출간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울프의 첫 소설은 그녀에게 성적 상처를 안긴 의붓오빠가 운영하던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그래서였는지 울프는 남편과 함께 자신들의 출판사를 운영하기로 한다. 그들이 운영하던 호가스 출판사는 울프의 작품 외에도 T. S. 엘리엇, 캐서린 맨스필드와 같은 당시의 작가들 작품도 출판하였고, 프로이트 전집을 출간하여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아내가 끊임없는 정신적 발작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레너드는 울프에게 놀라운 사랑과 헌신을 바쳤다. 그는 울프의 터무니없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결혼하였다. 그것은 결혼 후에도 성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녀의 성에 대한 혐오감이 어린 시절의 성적 학대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프로이트적인 해석으로 아버지와 친오빠에 대한 대상 이미지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러한 울프의 이기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레너드는 아내의 건강과 창작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더구나 울프는 동성애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또 그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울프와 열 살 연하였던 여류작가 빅타 색빌-웨스트와의 관계는 육체적인 관계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는 상당히 깊은 연인의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 이성과의 성적 접촉을 꺼렸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울프의 자기중심적 행태를 보면, 레너드의 헌신적인 사랑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버지니아 울프는 폐쇄적인 정신세계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여성의 삶이 남성에 종속되어 있던 시대에 그것을 혐오하고 그것에 저항했던 반항아였다. 그렇게 유아론(唯我論)적 세계 속에서 살던 그녀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그녀의 문제는 그 즐거움을 위해 자신이 혐오했던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레너드와의 결혼은 그녀가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순박하고 헌신적인 유태인 레너드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배우자였다. 어떤 의미에서 울프는 그를 이용했을 뿐이었으며, 그와의 결혼은 사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도피였다. 결혼 생활 내 내 울프는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목욕을 하는 도중에도 쉴 새 없이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렸으며 주기적으로 우울증에 빠져 들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정신병 발작을 본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은 그녀의 상태를 잘 알고 있던 레너드가 사전에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차단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편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져 갔다. 그런 그녀에게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이 영국을 폭격하기 시작한 것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더구나 독일이 영국을 침공하려 한다는 소문은 그녀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왜냐면 자신의 유일한 보호자였던 남편이 유태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울프의 불안과 좌절감은 고조되었고, 그 극심한 압박감 속에서 그녀는 마침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리고 온 생애를 바쳐 그녀에게 헌신하고 그녀를 지켜온 남편에게 마지막 사랑과 감사의 편지를 남겼던 것이다. “저는 제 인생의 모든 행복을 당신에게 빚지고 있었습니다.”

이 위대한 여류작가는 그 문학적 성취와 헌신적인 남편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슬픔 속에 있었을까? 도대체 그녀가 진정으로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그녀는 행복한 여성이었다. 홀로 남성 중심의 세계에 저항하고 그 안에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녀에게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 그녀만을 사랑한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남편이라는 이름의 남성---그녀가 혐오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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