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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Sep 28. 2020

상상, 그 무한의 세계 (2)

상상의 몰락, 침범당한 신의 영역

상상의 몰락      

  

상상의 결과는 구체적이다. 그래서 상상은 우리의 삶에 뚜렷한 영향을 끼친다. 상상은 인류의 문화와 문명의 발전을 가능케 했다. 그것은 오늘날 과학정신의 원천이었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상상의 결과가 구체적이고 위대한 만큼 그것은 또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인간의 삶을 타락시키는 지극히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상상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생산적이지 만은 않다. 오늘날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처한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 위기, 거대한 운석과의 충돌, 문명의 타락... 천문학, 기상학, 역사가 알려주는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는 인간의 발명품인 핵전쟁이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핵을 발명했고, 인류의 조상이 불을 발명한 것처럼 삶의 모습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중국 베이징 부근에서 발견된 베이징 원인의 두개골 옆에서 탄 볍씨가 함께 발견되었다. 수백만 년 전 인류는 불을 발명했고 그로 인해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었다. 날 것을 먹기 위해 발달했던 턱의 골격이 익힌 음식을 먹으면서 뇌의 진화로 바뀔 수 있었다는 것이 인류학의 발견이다. 그 불의 발명 못지않게 인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 핵의 발명이다. 그러나 엄청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핵 발전은 오늘날 인류 전체를 파멸시킬 수 있는 플루토늄을 만들어 낸다. 

  

1945년 8월 6일 리틀 보이(Little boy)라고 불린 원자폭탄이 일본 히로시마에, 그리고 3일 후 8월 9일 "팻 맨"(Fat man)이 나가사키에 투하됐다. 이 두 개의 폭탄은 역사 상 최초로 전쟁에서 일반 시민의 학살에 쓰인 핵폭탄이었다. 원자탄이 투하되는 순간, 수 만 명의 사람들이 증발하거나 검은 숯덩이로 변하고 히로시마라는 도시는 지도에서 사라지고 만다. '팬더모우니엄'(pandemonium)! 핵폭탄이 터진 지상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피폭 후유증으로 죽거나 고통받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원자(atom)가 분리(split)된 후 세상은 변했다”고 개탄한다. 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는 끔찍했다. 이제 세상은 자연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고 인간의 실수로 멸망을 맞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침범당한 신의 영역    

  

십여 년 전 타임지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상단에 게재된 사진에는 개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원을 이루고 있었다. 중국계 과학자 두 사람이 수컷 개미의 유전자를 조작해 동성애 개미를 만든 것이다. 사진 속의 개미들은 동성의 개미에게 성적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이 충격적인 결과가 인간이 이룩해낸 과학 발전의 한 모습이란 말인가! 유전자 복제(cloning)를 통해 동일한 유전적 성질을 가진 개와 양과 소가 만들어지고 마침내 나와 똑같은 인간이 탄생한다.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상상이 얼마나 왜곡되고 위험한 상태로 발전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성경 속의 바벨탑은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허망한 욕망을 상징한다. 신은 인간의 그러한 허영을 용서하지 않았고, 탑을 쌓는 사람들의 언어를 혼란시켜 그 일을 막았다. 그릇된 인간의 상상은 결국 신의 영역을 침범한다. 그리하여 프랑켄슈타인의 후예들을 만들어내고,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이끌어가고 마는 것이다. 홍해 연안 제다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도시에 세워질 킹덤 타워(Kingdom Tower)는 높이가 1km에 달하는 200층 규모의 건물로 알려지고 있다. 인간은 건축공학의 기술로 이제 새로운 바벨탑을 세우려 하는가. 제국을 건설하고 지상의 모든 권력을 가졌다고 믿은 고대의 황제들은 신의 섭리를 거부하고 영원한 삶을 꿈꾸었다. 영원불멸의 꿈은 이제 과학의 힘으로 현실이 되고 있는 걸까? 노화의 핵심이라는 미토콘드리아를 조종하여 우리의 생명은 영원히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인류의 과학문명이 나아갈 옳은 길인가?     

  

인간의 상상은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상상 속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다. 그러나 상상의 힘, 그 결과는 통제되어야 한다. 여기서 통제라는 것은 상상의 주체가 되는 ‘나’라는 존재가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통해 스스로의 상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인문학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인간은 상상의 동물이다. 그들은 상상을 통해 존재를 유지하고 발전시킨다. 그러나 그 상상은 좋은 것이 될 수도, 나쁜 것이 될 수도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역사를 통해, 문학을 통해 그리고 철학적 사색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문학적 상상력이라는 표현을 쓴다. 과거의 사람들을 통해 배우고, 삶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는 문학과 상상의 깊이를 더하는 철학을 통해 절제되고, 훈련되고, 고양된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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