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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Sep 30. 2020

문학, 우리들의 자화상 (2)

뫼르소와 라스콜리니코프

프랑스 작가 카뮈(Albert Camus)의 ‘이방인’에 나오는 젊은 뫼르소는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의 ‘죄와 벌’에 나오는 청년 라스콜리니코프는 인간을 나폴레옹과 같은 위대한 종족과 버러지 같은 천박한 족속으로 나눈다.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빠는 전당포 노파는 죽어야 하는 벌레 같은 목숨이었다. 그래서 그는 살인을 한다. 두 젊은이의 살인에는 어떤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체코 태생의 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의 소설 제목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과 무의미성을 보여주는 문학사의 대표적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젊은이의 행위는 살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하루살이처럼 죽어가는 인간을 목도한 유럽인들은 신에 의해 부여받았다고 믿었던 자신들의 본질을 의심한다. 그리고 인간은 본질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불안한 실존임을 확인한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는 실존주의의 명제는 그렇게 탄생했다. 신에 대한 믿음, 인간의 본질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실존주의자들에게 인간은 아무런 본질도 규정되지 못한 채 세상에 던져진 존재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본질을 찾기 위한 무의미한 노력을 계속한다. 그러한 모습은 언덕 위로 힘들게 바위를 밀어 올리고, 꼭대기에 오르면 다시 바위를 밑으로 굴려버리는 신화 속 시시포스를 닮아있다. 그들은 평생 스스로의 본질을 찾으려 하지만, 어느 곳에도 본질은 없다. 그렇게 부조리한 삶이 계속된다. 부조리 문학은 이러한 인간 상황에 대한 인식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영국의 시인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이렇게 묘사한다. “인생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을 위한 끝없는 준비이다.”(Life is a perpetual preparation for something that will never happen.) 일어나지 않을 일, 얻을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인간, 그 모습은 얼마나 부조리한가! 이렇게 인간은 부조리(Absurd)한 삶에, 실존적 불안 속에 빠져, 미국 시인 오든(W. H. Auden)의 시 제목처럼 ‘불안의 시대’(The Age of Anxiety)에 직면하게 된다. 

  

문학은 시대의 분위기를 규정한다. 삶의 형식을 정하고 인간의 상황을 묘사한다. 그렇게 문학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포착하여 그것에 이름을 붙인다. 영국의 시인 엘리엇(T. S. Eliot)은 ‘황무지’(Waste Land)라는 시에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말한다. 만물이 소생하고 생명의 환희로 가득한 봄의 시작을 그는 왜 잔인하다고 했을까? 과학문명이 꽃 피고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 희희낙락하는 오늘의 세상에서 우리는 척박하지만 소박하고 따뜻함이 넘쳤던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겨울이 따뜻했다.’고 말한다. 21세기 전반, 이 시대의 감정은 무엇인가? 인간은 그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의 문학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세계를 자신만의 색깔로 채색하고 있다.   

  

하지만 문학이 그려내는 진실은 개별적이다. 뫼르소도 라스콜리니코프도 그들만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부조리 문학도 실존주의 철학도 문학을 한 가지 범주로 묶지는 못한다. 문학작품 속 주인공은 자기 자신만의 역사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리고 시대를 넘어, 보편화의 범주를 넘어, 시대의 정신을 넘어, 한 인간의 마음 그리고 그 만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문학이 뒤흔들어 놓은 상상력은 규범화된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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