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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01. 2020

사이버 유토피아 (1)

사이버 우주-새로운 디스토피아

죽이는 법 배우기     

  

군사전문가들은 두 번의 세계 대전에 사용된 무기를 검사한 후 놀라운 결과를 알게 된다. 전투에 사용되었던 총의 대부분이 한 번도 격발 되지 않았으며 또한 격발 된 총도 실제 상대를 향해 조준된 것은 아니었다는 조사 결과였다. 왜 일까? 생사가 달린 전쟁터에서,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병사들은 차마 인간을 향해 총을 발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같은 인간을 죽이지 못했던 심성. 불과 100년 전 우리의 모습이었다. 이 결과에 충격을 받은 군사전문가들은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내었다. 그것은 사격연습에 사용되는 표적의 둥근 원을 사람의 형상으로 바꾸어 그린 것이었다. 이후의 결과는 놀라웠다. 월남전에서는 보다 많은 병사들이 적을 향해 총격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심성이 얼마나 나약하고 외부의 자극에 쉽게 영향을 받는가를 보여준다.  오늘날의 수많은 폭력적 상황, 인간 생명에 대한 경시의 모습을 우려하는 이유이다. 영화와 인터넷과 스마트폰 속의 죽이고 죽는 게임은 우리에게 살인의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폭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게임을 통해 돈을 따거나 잃는 사행성의 조장은 인생의 진지함과 엄격함을 파괴한다. 가상현실 속의 폭력에 익숙해진 현대의 병사들은 실제 전투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까. 아무런 책임의식 없이 진행되는 사이버 도박에 중독된 우리에게 삶은 그저 우연과 행운에 기댈 도박일 뿐이지 않을까.      


사이버 좀비    

  

사이버 공간은 인간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증폭시킨다. 수많은 정보가 흐르고 지구 상 어느 곳도 거의 즉각적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한 세대, 한 세기의 시간을 통해 변화되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거의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 가히 혁명적 변혁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사이버의 세계가 가져다주는 상상의 깊이와 넓이가 우리의 통제 범위를 쉽사리 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늘을 날지 않아도 위성의 눈으로 남극의 빙하를 볼 수 있고, 수천 미터 깊이의 해저를 탐험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기적들이 인간의 상상과 열망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 몇 번의 클릭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상상력은 무한으로 극대화되지만, 그 상상의 결과가 우리의 삶에 구체적이고 긍정적으로 나타나지 못하고 사이버 상의 대리만족으로, 호기심과 무의미한 환상만으로 끝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인류가 발견한 가장 큰 대륙, 사이버 세계에서의 상상은 인류의 역사에 엄청난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이버 좀비들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사이버 세계에서 인간은 구경꾼에 불과하다. 제 아무리 자유롭게 그 세계를 탐색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전원의 파워 버튼 하나로 그 세계는 끝나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간은 현대인이 찾아낸 또 다른 유토피아 일지 모른다. 영국 작가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지은 짧은 소설 속의 섬 유토피아. 그곳은 현실의 삶, 현재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우리 모두의 갈망의 종착지이다. ‘유토피아’(Utopia)의 주인공 히스로디스는 대양을 항해하다 우연히 한 섬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곳에 매료되어 5년 동안 그곳에 체류한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 사람들에게 그곳을 알리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마치 사이버 공간을 여행하다 전원을 끄고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는 오늘의 우리처럼 말이다. 그러나 유토피아라는 말의 어원은 이상향에 대한 열망에 빠진 우리들을 허망함으로 채운다. 고대 그리스어로 ‘ou’는 없음을 뜻하고 ‘topos’는 장소를 의미한다. 즉 ‘어디에도 없는 곳’(nowhere)이라는 뜻이다. 사이버 세계의 유토피아는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환상 속에나 등장한다. 현실에 뿌리박지 못한 환상 속을 배회하는 사이버 좀비들의 세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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