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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02. 2020

사이버 유토피아 (2)

클릭으로 이루어지는 환상과 환멸

사이버 전사의 미래    

  

사이버 공간은 현대인이 기다려온 유토피아이고, 이태리의 철학자 캄파넬라(Tommaso Campanella)가 찾은 ‘태양의 나라’이며, 영국의 사상가 베이컨(Francis Bacon)의 ‘노바 아틀란티스’(Nova Atlantis)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세계는 유토피아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실재가 상실된 세계이다. 권력 이론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 알튀세(Louis Pierre Althusser)는 국가가 개인의 삶을 통제하는 방법에는 '억압적 구조'  (repressive state apparatus)와 '이념적 구조'(ideological state apparatus)의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즉 경찰, 군대 등 공권력에 의한 물리적 통제와 교육, 종교, 대중매체 등에 의한 정신적 통제를 가리킨다. 이 두 가지에 대해 인간은 언제나 수동적이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집단 속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인다. 현대인들이 선택한 사이버 세계는 대중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념적 구조이다. 그들 스스로 그것을 선택하고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필사적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남기고 싶어 한다. 버튼을 누르면 사라질 그것이지만 내일 또다시 버튼을 눌러 그것을 불러올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이제 인류의 문명은 사이버로 조종된 인간들에게 맡겨지게 될 것이다. 스스로에 의해 조작되고 훈련된 사이버 전사들. 그들은 사이버 세계는 미래의 세계라고 말한다. 과거의 사람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이상향을 찾아 헤맸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오늘의 과학 기술이 가져올 미래의 세계를 믿는다. 그러나 유전공학이 생물학을 신의 영역에 대한 침범의 단계로 이끌었던 것처럼, 사이버 전사들의 미래 세계는 인간의 상상력을 조종해 감히 엿보지 말아야 할 신성의 세계를 훼손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이버 공간이 그리는 미래의 세계를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돌아가야 한다. 이미 인간의 상상력은 그 한계를 넘었다. 인간이 성취해야 할 대상이 더 이상 없어서가 아니고 우리가 이미 이룬 것에 대한 과도한 자만심 때문이다. 사이버 세계에서 우린 아바타를 만들고, 사랑의 환상을 만들고 심지어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려 한다. 사이버 공간 속에서 인간은 신이 되려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정신의 황무지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진부할 뿐이다. 상상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을 때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역사를 이루고 문명과 문화를 탄생시켰다. 이제 사이버 전사들은 더 이상 역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더 이상 문명의 발전이 필요하지 않다. 가상의 공간에서 그들의 역사, 그들의 문명이 순식간에 건설되고 찰나에 소멸되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현실 속에서 고뇌하고, 벽돌을 날라 피라미드를 지을 것인가. 인문학적 사변들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소멸되었다. 그리고 그리스의 철학자, 공자의 제자들 속에서 회색의 머리를 날리며 배회하고 있을 뿐이다. 먼지 덮인 책들 속에서 학자들의 넋두리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멸망을 기다릴 것인가. 이제 역사가 과거의 그림자 속에 묻히고, 철학은 게으른 궤변론자의 웅얼거림처럼 무의미하고, 문학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고 생과 사를 넘나드는 판타지에 불과하게 된다면, 무엇이 그들을 대신해 과거, 현재와 이어지는 실제의 미래를 만들어 낼 것인가. 이제 자신들이 미래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버 전사들을 향해 새로운 각성을 전파할 새로운 사고의 패러다임이 등장해야 한다. 인간과 인간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문학, 인간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색, 역사라는 과거의 거울을 되살려 내야 한다. 사이버 전사들의 무자비한 파괴에 맞서 인간을 인간다울 수 있게 하는 보다 명료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삶에 대한 새로운 탐구가 요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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