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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31. 2020

당신께 드리는 말 선물 (66)

그냥 이 자리에 있겠습니다.

Be Glad Your Nose is on Your Face.

            by Jack Prelutsky       

Be glad your nose is on your face,

not pasted on some other place,

for if it were where it is not,

you might dislike your nose a lot.     


Imagine if your precious nose

were sandwiched in between your toes,

that clearly would not be a treat,

for you'd be forced to smell your feet.     


너의 코가 얼굴에 있는 걸 다행으로 알아.

다른 곳에 붙어있지 않은 것을 말이야.

원래의 자리에 있지 않다면

아마 너는 너의 코를 싫어하게 될 거야.   


너의 소중한 코가

발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다고 생각해 봐.

정말 즐겁지 않을 거야.

발 냄새를 맡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잭 프레루츠키의 ‘너의 코가 얼굴에 있는 걸 다행으로 알아.’에서)    


잭 프레루츠키라는 미국 동시 작가의 시입니다. 1940년생이니까 올해 여든이 넘었네요. 50여 권의 동시집을 출판해서 미국 동시의 계관시인으로 불렸던 사람입니다. 이 시는 아이들을 위한 시이지만 영어로 써진 많은 시들 중에서도 늘 손꼽히는 시입니다. 첫 두 연만 소개했는데 이후 세 개의 연이 더 나옵니다. 세 번째 연에서는 코가 머리 위에 붙었다면, 머리칼 때문에 간지러워 미치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네 번째 연에서는 코가 귀 안에 붙어있다면 그건 재앙이 될 거라고요. 왜냐면 재채기를 하는 순간 머리가 온통 흔들릴 테니까 말입니다. 마지막 연에서는 그런 이유로 당신의 코는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눈과 뺨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코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많은 것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정말 그것들이 그 자리에 있어서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소중한 사람이 지금 우리의 곁에서 다른 곳으로 떠난다면 그것은 얼마나 힘들고 슬픈 일일까요. 정들고 익숙한 지금의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한다면 우린 무척 당황스럽겠지요. 더 좋은 자리로 간다면 괜찮을 거라고요? 하지만 더 이상한 곳으로 가게 된다면 어쩌지요?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버티고, 그 존재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더 낳지 않을까요? 우린 조금만 불편하면 자기 자리를 버리고 다른 곳을 찾아 나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꼭 해야 할 많은 것들을 도외시하고 다른 것을 쫓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요?     


물론 그 자리에 없는 것이 더 좋았을 것들도 있습니다. 백성들의 고통에 눈을 감고 지붕 높은 집에서 으스대는 정치인, 고위공직자, 재벌 회장들은 거기가 자기 자리인 것을 너무나 다행스럽게 생각할 겁니다.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인간들은 얼른 그 자리에서 쫓아내야죠.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교수가 되고서는 그것이 마땅치 않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정치교수들, 멀쩡히 판검사가 되어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목을 빼고 여의도 쪽만 바라보는 법조인들은 사실 빨리 그 자리에서 떠나 주는 것이 더 좋은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제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곳에 그들이 있어서 필요할 때 우리가 안심하고 찾아갈 수 있지요. 사소한 일이라도 그곳에 없다면 우리가 너무나 불편하고 힘들, 그런 사람들이 고맙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우리의 이웃이지요. 슈퍼 아저씨, 택배 기사들, 환경 미화원들, 버스 기사들, 유치원 선생님... 아마 세다 보면 끝이 없을 겁니다.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그분은 늘 그 자리에 계셨죠. 꾸지람을 하실 때도, 자식이 안쓰러워 눈물을 흘리실 때도 그분은 거기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늘 그리운 분이시죠. 제 자리에 있는 많은 것들, 많은 사람들을 고맙게 여겨야겠습니다. 그리고 나도 그냥 이곳에 있어야겠습니다. 누군가 날 찾아올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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