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3일 화요일, 오늘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날이다. 230년 전 미국 독립전쟁의 지도자 조지 워싱턴이 초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45명의 대통령이 신흥국가에서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Pax Americana)'라 불리는 절대적 초강대국이 되기까지 미국을 이끌어왔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제도와 대통령제는 오늘날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의 선거와 정부 운용에 전형을 세웠다. 그리고 그 복잡한 선거 과정에도 불구하고 양보와 수용이라는 오래된 미덕을 실천해온 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선거는 결과가 나오기 이전부터 '우편 투표'니 '선거 불복'이니 하는 미국 정치에서 듣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코로나와 흑인 시위 그리고 대통령의 거친 언동으로 미국에 대한 이미지가 과거의 세련되고 민주적인 모습에서 뭔가 거칠고 투박한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 대통령 선거에 즈음하여 미국의 건국정신과 대통령 선거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은 1776년 7월 4일을 건국일로 정하고 있다. 그 날은 영국의 식민 통치 하에 있었던 미국의 13개 주가 토마스 제퍼슨이 기초한 독립선언서를 선포한 날이었다. 그 선언서는 남북 전쟁 당시 게티즈버그의 전쟁터에서 아브라함 링컨이 행한 연설 속에 그 정신이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84년 전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 대륙 위에 자유의 이상으로 잉태되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명제에 바쳐진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켰습니다.” 자유와 평등, 그것이 미국의 건국이념이었던 것이다.
1620년 9월 16일 102명의 청교도들은 메이 플라워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영국의 플리머스 항을 출발한다. 그들은 종교개혁 이후 구교인 가톨릭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선 앵글로색슨 혈통의 신교도들이었다. 그들은 긴 항해 끝에 오늘날 미국의 동북부 지역 매사추세츠 연안에 도착한다. 12월의 추위 속에 남겨진 그들은 첫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사망한다. 미국인들은 이들을 미국 건국의 조상으로 받들고 그들을 ‘순례의 아버지들’(Pilgrim Fathers)이라 부른다.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그들은 척박한 미지의 땅에서 고난의 삶을 시작한다. 이 시기 그들은 대륙의 토착민들인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는다. 인디언들은 유럽에서 온 백인들에게 생존의 방법을 전수한다. 그렇게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후의 미국 역사는 토착 인디언들과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대륙을 점령한 그들은 생존한 토착민들을 ‘인디언 보호지역’(Indian Reservation)에 격리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오늘날 미국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계층을 가리켜 WASP라 부른다. W(White: 백인), AS(Anglo-Saxon: 앵글로색슨), P(Protestant: 개신교). 그들은 영국인의 조상인 앵글로색슨의 혈통을 이어받은 백인 개신교도들이었다. 청교도는 성경을 가장 엄격하게 해석하는 개신교의 지파였다. 오늘날 미국을 가리켜 인종의 ‘도가니’(melting pot) 혹은 ‘샐러드 그릇’(salad bowl)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WASP 이외는 결국 ‘소수자’ 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아메리카로 이주해온 유럽인들은 동부 해안을 중심으로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들의 주(州, state)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18세기 중반 13개의 주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자치를 중심으로 느슨한 연방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본국인 영국과의 갈등이 시작된다. 특히 세금 문제로 부딪힌 영국과 식민지 미국은 마침내 전쟁에 돌입한다. 미국인들은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고자 한 독립전쟁을 ‘혁명전쟁’(Revolutionary War)이라 부른다. 그것은 프랑스의 민중들이 왕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수립했던 프랑스혁명의 전조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전쟁의 결과 미국은 마침내 주권국가로 탄생하고, 혁명전쟁의 지도자였던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정치체제를 확립한다. 헌법을 기초하고, 이후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수정법안을 첨가해왔다. 예를 들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 헌법 1조, 노예제도 폐지를 명문화한 13조,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 19조 등 총 27개의 수정조항이 제정되어왔던 것이다.
19세기 중반, 미국은 새로운 갈등을 잉태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의 산업은 남부의 농장 중심 농업경제와 북부의 공업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남부는 거대한 농장의 운영을 위해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했으며, 이에 따라 아프리카에서 인신매매로 데려온 흑인 노예들을 농장의 일꾼으로 부리고 있었다. 산업 구조의 차이로 인한 경제적 갈등이 원인이 되어 결국 남북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미국은 ‘내전’(Civil War) 상태에 돌입한다. 그리고 그 전쟁의 결과는 북부의 승리로 인한 노예해방으로 이어진다. 남북전쟁 후 19세기 후반 미국은 북부의 공업을 중심으로 급속도의 산업화를 이룩하고 20세기 초강대국으로의 경제적 발판을 마련한다. 1차 세계대전의 참전으로 군수산업의 붐과 함께 괄목할 경제성장을 이루던 미국은 1920년대 후반 급격한 경기침체로 대공황에 빠지게 된다.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으로 경제의 활력을 회복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의 참전을 계기로 서구 세계의 중심국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미국의 건국정신은 흔히 금욕적이고 엄격한 청교도 정신(Puritanism), 동부에서 서부로 확장해 가면서 훈련된 개척정신(Frontiership), 개인적 자유와 잠재력의 극대화를 위한 개인주의(Individualism) 그리고 실용주의(Pragmatism)로 이야기된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모국이었던 영국의 의원내각제에 대비되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였다. 혁명전쟁의 총사령관, 초대 워싱턴 대통령 이래 45명의 대통령들이 미국을 이끌어왔다. 특히 35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아일랜드 출신 가톨릭이었던 점에서 WASP 중심의 미국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고, 44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의 변화를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 할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제도는 특이하다. 4년마다 11월 첫 월요일이 있는 주의 화요일을 선거일로 지정한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1년 이상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까닭에 미국인들조차도 그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그렇게 복잡하고 많은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은 건국 당시 13개 주가 아메리카 합중국으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각 개의 주가 동등한 권한을 갖도록 한 초기의 합의 때문이었다. 사실 미국인들은 미국이라는 국가 개념보다는 자신의 출신 주를 더 중요시하는 성향이 있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지역에 따른 지지 정당이 정해져 있어 경합 주(swing state)에서 승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주별 선거인단 수
대통령 선거는 우선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거대 양당의 후보를 선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후보의 선출을 위해 각 당은 코커스(caucus; 당원대회)나 프라이머리(primary: 예비 선거)를 통해 전당대회의 대의원을 선출한다. 이 대의원들을 통해 당의 대통령 후보가 선정되는 것이다. 한편 모든 미국 국민들은 자신이 속한 각 주의 선거인단을 선출하고, 이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형식적으로는 간접 선거이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직접 선출이나 다름없다. 선거인단의 수는 각 주의 하원 의원과 상원 의원을 모두 합친 수이다. 435명의 하원 의원과 100명의 상원 의원, 그리고 워싱턴 D.C. 를 대표하는 3명의 선거인단까지 합해 모두 538명이다. 이렇게 선출된 선거인단이 모여서 미국의 대통령을 선출한다. 50개 주 중에서 메인 주와 네브래스카 주를 뺀 48개 주는 승자독식(winner-takes-all) 방식으로, 유권자들의 투표수와 관계없이 승자가 그 주의 모든 선거인단을 갖는다. 반면 메인과 네브래스카 주는 비례배분 방식(Proportional System)을 채택하고 있다.
이렇듯 대부분의 주에서 승자가 전체 선거인단을 차지하는 까닭에 일반 유권자의 투표수가 많더라도 선거인단의 수가 모자라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가까운 예로 지난 2016년의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전체 유권자 득표수에서는 앞섰으면서도 선거인단 수에서 뒤져 도널드 트럼프에게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 올해의 선거에서도 여론 조사에서 앞서는 후보일지라도 승리를 위한 선거인단의 확보를 장담할 수는 없다.
1789년 첫 대통령 선거를 치른 지 2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미국은 부분적인 개정과 변경을 했을 뿐 전체적인 선거제도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효율성보다는 미국적 전통을 유지하고 50개 주의 고유한 권리와 방식을 존중해온 까닭이다. 우리의 잦은 선거제도 개정을 고려할 때, 제도보다는 그 제도를 운용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다수 유권자의 표를 얻었으면서도 미국의 대통령이 되지 못한 모든 후보가 불합리해 보이는 제도에 순응하고 기꺼이 패배를 인정해왔기 때문이다. 과연 이번의 선거에서도 그러한 페어플레이의 정신은 다시 발휘될 것인가? 오늘날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미국의 대통령이 민주적이고 모범적인 선거의 전통 속에서 등장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