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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05. 2020

당신께 드리는 말 선물 (70)

아버지는 외롭습니다.

Those Winter Sundays

              by Robert Hayden (1913~1980)        


Sundays too my father got up early

And put his clothes on in the blueback cold,

then with cracked hands that ached

from labor in the weekday weather made

banked fires blaze. No one ever thanked him.    


I'd wake and hear the cold splintering, breaking.

When the rooms were warm, he'd call,

and slowly I would rise and dress,

fearing the chronic angers of that house,    


Speaking indifferently to him,

who had driven out the cold

and polished my good shoes as well.

What did I know, what did I know

of love's austere and lonely offices?    


일요일에도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셨습니다.

암청색의 추위 속에 옷을 걸치고

매일의 거친 일로 쑤셔오는 갈라진 손으로

꺼져가는 불을 지피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았죠.      


나는 그제야 일어나 추위가 쪼개지고 깨어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방이 따뜻해지면,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

나는 느릿느릿 일어나 옷을 걸칩니다.

일상적으로 집안에서 일어나는 분노가 두려워    


건성으로 대꾸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추위를 몰아내곤

내 좋은 구두도 닦아놓으셨죠.

난 몰랐었습니다. 내가 뭘 알았겠어요.

그 엄격하고 외로운 사랑의 행위를.

(로버트 헤이든, ‘겨울날의 일요일’)    


여러분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입니까? 세대에 따라 아버지에 대한 느낌은 많이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20세기 초반에 태어난 미국 시인 로버트 헤이든에게 아버지는 늘 엄격하고, 거리감이 느껴졌던 옛 시절 아버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요즘은 20대의 청년에게도 ‘아버지’라는 말보다는 ‘아빠’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러울 만큼 부드럽고 헌신적인 아버지들의 모습이 일상적이죠. 아마도 세대 간에 느끼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느낌은 크게 달라졌을 겁니다.     


그럼에도 내게는 아버지하면 떠오르는 느낌이 있습니다. 난 지금도 어느 추운 겨울 저녁, 아버지가 두꺼운 외투 속에서 꺼내놓은 군고구마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안방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곁에 누워서 TV를 보시던 그분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울며 소리치시던 그분의 음성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아주 어렸던 시절, 친구를 만나러 나가시던 그분에게 함께 가겠다고 떼를 쓰는 나를 동네 빵집에서 한참이나 달래느라 진땀을 빼시던 그분의 표정도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동네 어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내 모습을 보고 그분이 내쉬었던 낭패스러운 한숨은 아직 내 맘 속에 후회로 남아있습니다. 출근을 준비하시던 아버지의 아침, 여전히 잠자리에서 꾸물거리던 내 귓가에 들리던 TV 소리, 어머니가 끓이시던 김치찌개의 냄새와 함께, 아버지는 어느 여름날 불현 듯 내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들은 무척 외로울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향하는 아버지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때론 자신감에 넘쳐 호기롭게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집안으로 들어서겠지만 또 어떤 날에는 마음 가득한 근심을 애써 숨기느라 어색한 표정을 감출 수 없을 겁니다. 호구지책을 세우는 세상살이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테니 말입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슬퍼서도, 풀이 죽어서도, 아파서도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는 가족들에게는 세상 전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제 가슴을 다 퍼주었지만, 어느 순간 아내와 아이들의 바람을 제대로 채워주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합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그들을 위해 온 마음을 바쳤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 일터를 나온 그들에게는 한 때의 동료들도, 가족도, 그리고 옛 친구도 주변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껍데기만 남은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요. 사랑하면서도 마음 한 편에 미움을 키우고 있던  이유는 뭘까요. 아들들은 왜 그리 아버지가 어색했을까요. 하지만 그분이 없는 세상은 너무 두렵허전합니다. 아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려줍니다. 그의 표정과 몸짓, 말투가 그리고 심지어 그의 모자람까지도 자식들에게는 너무도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죠. 그래서 부족했던 자신에 대해 때론 가슴 치며 후회하는 것이 아버지입니다. 그분 뒤에 숨어있던 아이는 이제 그분의 앞에 서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딸과 아들을 바라보며 애써 눈물을 감춥니다. 기쁘고 대견스럽지만 어쩐지 그것이 자신의 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세상 속에서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이 왜 그리 어려웠는지. 이제 삶을 돌아보며 늙어가는 아버지들은 애써 뒤로 숨습니다. 한 때 넓은 가슴과 등으로 그늘을 만들던 그들도 이제 잎을 떨군 겨울의 나무처럼 외롭게 서있습니다. 아, 아버지라는 이름은 왜 그렇게 외로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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