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 기본으로 돌아가라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이라는 희극이 있다. 장난 같은 책략으로 남녀 간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굳건해 보였던 사랑이 하찮은 거짓에 속아 깨어진다. 심지어 사랑으로 인해 오랜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사랑조차도 왁자지껄 한바탕 소동에 불과한 모습이다.
오늘 저녁식사 자리에서 동료 교수가 느닷없이 “다 헛소동이야”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응? 셰익스피어?”라고 물었다. 국내 교육공학 분야의 1세대에 속한 그 친구가 웃으며 대답한다. “아니, 교육 얘기야.” 사실 지난 30여 년 한국의 교육계는 수없이 많은 교육 이론들이 백화제방을 이루었다. CTL(Center for Teaching and Learning)이라는 기관이 학교마다 세워지고 교수법과 학습법이 넘쳐났다. 과거의 구태의연한 교수법에 의존하던 교수들은 플립트 러닝(flipped learning),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 pbl(문제 해결 학습) 같은 용어에 왠지 자신만 구식인 것 같아 눈치를 봐야 했다. 그래서 교수법 세미나에 참여하고,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교수 방식은 어떤 것인지 배우고자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강의실 안에서는 늘 하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몇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교수들은 학생들을 만날 기회를 잃어버렸다. 온라인 수업을 한다지만 화면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강의실의 그들과 같을 수 없다. 온 택트니 언택드니 하는 비대면 수업을 위해 이런저런 방법들을 기웃거리며 어떻게 하든 강의실 수업에 못지않은 강의를 해보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건 그저 바람일 뿐이었다. 교육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화면으로 얘기하고, 텍스트를 주고, ppt 화면에 녹음을 하고, 온라인으로 토론을 하고 보고서를 받아 피드백을 주는 것으로는 무언가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이 남는다. 교육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교육은 눈빛이 교환되고 상호 간의 마음이 만나고, 서로의 감정과 느낌이 교류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지식이 전달된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예언처럼 이야기되던, 강의실 없는 교육, 교과서 없는 교육, 교사 없는 교육은 환상일 뿐이다. 물론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사이의 교류의 방식과 전달의 매체는 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미래 교육에 대한 예언은 새로운 교육의 등장이 아니고 오랜 옛날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의 교육에 교실이 있었는가. 그가 만든 교재가 있었는가. 아무것도 없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만남과 소통만이 있었다. 이제 우리의 교육은 고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한 가지 차이는 피가 흐르는 육체의 만남이 이미지의 대면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뿐이다.
요즘 융합(Convergence)이라는 용어가 유행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자였으며 철학자였다. 그것은 가장 근원적인 학문의 융합이었다. 이 복잡한 지식의 시대에 다양한 지적 영역이 합쳐지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그것을 이론으로 설명하고 인위적으로 융합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학문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헛소동’의 주인공인 그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교육은 결코 개혁의 대상일 수 없다.” 백번 옳은 말이다. 우리 사회는 걸핏하면 개혁을 부르짖는다. 정치개혁, 교육개혁, 사회개혁, 검찰개혁... 개혁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끼어들어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수많은 개혁을 외쳤지만 그것들이 가져온 진정한 변화는 무엇인가? 그중에서도 교육은 결코 개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수천 년 동안 이루어진 교육의 본질을 몇몇 학자들의 피상적인 이론으로 바꾸겠다는 발상이 우스꽝스럽다.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지적, 감성적 교류이며 인간성의 교감이다. 그것이 사라진 테크노 교육은 그저 쇠를 녹이고, 도구를 벼르는 기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제아무리 인지과학, 뇌 과학이 발전해도 지식은 머리에서 머리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경험한 후대에 의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제발 교육을 그대로 두라. 교육을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은 정치가나 선동적인 학자들뿐이다. 교육이라는 망토를 씌우고 인간의 마음을, 사상을 조종해왔던 사람들, 그래서 지배자들의 논리에 순응하고 그들이 만든 세상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그런 대중들을 원하는 사람들이 교육의 본류를 함부로 바꾸게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교육을 돌아보라. 해방 후 한국의 입시제도는 거의 해가 바뀌듯 변화해 왔다. 국가가 제시하는 교육과정도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그것을 누가 만드는가? 낡은 배에 널빤지를 대듯 수없이 땜질당해온 우리의 교육정책은 누구에 의해 입안되었는가? 외국의 교육이론을 금과옥조처럼 가져다 우리의 교육현장은 도외시하고 정책이라 만들어온 이론가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그대들의 이론이 과연 백년지계이어야 할 교육에 합당한 것이었는지. 온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하듯 꺼내 든 그런 엉성한 이론이 진정 우리의 젊은이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었는지. 교육부가 발표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미래 역량으로 제시하고 있는 ‘지식정보처리 역량,’ ‘자기 관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의사소통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공동체 역량’이란 화려한 구호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실현될 수 있는가. 이 필수적인 역량이 과거의 교육에서는 무시되었던 영역인가? 이렇게 제목을 던지고 무슨 과목은 어떻게 가르쳐야 한다는 전지적, 지시적 교육정책으로 우리의 젊은이들이 미래를 이끌어갈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 제발 교육을 그대로 두라. 가르치는 일은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다. 그 가치를 굳이 인위적으로 정하려는 의도는 백 번을 바꾸어도 그 자리일 뿐이다. 그대들이 얘기하는 ‘언택트’(un-tact)를 함부로 교육에 손대지 말라는 교훈으로 여기는 것이 어떤가.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에 대한 여러 가지 방식이 제시되고 있다.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로 모두가 당황하는 시점에 이런저런 방안이 제시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제는 전통적인 방식만으로 교육을 이끌어갈 수는 없다. 종이책보다는 컴퓨터의 화면으로 읽고, 보고 쓰는 것이 편해진 학습자들에게 과거의 교육만을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현대의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전자제품들이 쏟아져 과거에는 사용법조차 어려웠던 것들이 오늘날에는 미취학 아동들의 손에서도 버튼 하나로 조종된다. 이 급변의 시대에 또 어떤 기술이 교육의 형태를 바꿀지 모른다. 더 이상 무쇠 솥에 밥을 짓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더 이상 분필 가루를 마시며 칠판 위에 필기할 것을 적어내는 것으로는 학습자의 요구를 충족할 수 없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변화하는 교육 방식만을 중요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본질, 교육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루려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다. 그리고 교육은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라는 시간을 초월한 교육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창의교육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사범대학에서는 창의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중고등학교 교사들의 현장 경험을 이론과 접목시켜 학생들의 창의성을 향상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과연 그 모든 시도는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고 있는가? 창의성은 상상력이다. 인간이 갖는 속성으로서의 상상력은 고대에서 현대에까지 이어져 오늘의 문명을 이루었다. 그러한 상상은 인간에게 내재한 직관적 능력에 의해 고양된다. 그들에게 상상의 필요를 제시하고 그것을 이루도록 하는 염원을 심어주어야 한다. 철학이 보통 사람의 삶에 가까이 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 현란한 언어의 유희와 지적 만족감을 난해함으로 대체시켰기 때문이 아니던가. 알 수 없는 기술적 용어를 배우느라 교육의 참 내용을 등한시하는 것은 시간의 낭비일 뿐이다. 필요한 모든 기술과 방법을 제시하라. 다만 그것이 현장에서 구체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방식으로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사람들의 깨달음이다. 자신을 끊임없이 연마시켜 학습자들의 열정을 끌어낼 수 있는 학문적, 인간적 성숙함으로 무장해야 한다. 교육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어떠한 기술과 방법론도 사람에 우선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을 우리 가르치는 사람들이 먼저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