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판사님, 우리 판사님!

우리는 양심의 힘을 믿습니다.

by 최용훈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는 유명한 판결이 나온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안토니오라는 베니스의 상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정해진 날짜에 갚지 못하면 그의 살 일 파운드를 자신이 원하는 신체 부위에서 떼어가겠다는 계약을 맺었다. 자신했던 것과는 달리 약속한 날에 돈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는 이제 샤일록의 손에 살을 베이고 목숨을 잃을 처지에 놓이게 된다. 결국 재판이 열리게 되고 판사는 먼저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간청한다. 하지만 샤일록의 냉담한 거절에 판사는 마침내 이렇게 판결을 내린다. “살 일 파운드를 베어가되 계약서에 명기된 바 없으므로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서는 안 된다.” 그 현명한 판사는 원래 재판장인 공작으로 변장한 안토니오의 친구 바사니오의 부인 포셔였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전혀 성립될 수 없는 재판이었다고 한다. 우선 안토니오와 샤일록 사이의 계약은 그 내용 상 법적인 효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금전 대신에 신체의 일부분을 훼손하는 것은 법으로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살을 베어내는 것을 허용하는 한에는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없으므로 포셔의 판결은 현대의 법조문 상으로는 과도한 요구라는 설명이다. 하기는 판사로 변장하고 대리로 판결을 한 행위는 그것만으로도 큰 범법행위이니 요즘 같으면 포셔도 감옥에 갈 판이다


법은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 법의 제약이 없다면 세상은 말 그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래서 사회의 안정과 개인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법과 규범을 정하고 인간은 그 안에 스스로를 제약하고 구속한다. 그런 이유로 법은 가장 공정하고 타당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법의 정신은 정의와 평등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지켜져야 한다.’(Fiat justitia, ruat coelum: Let justice done, though the heaven should fall.)라는 유명한 법언(法言)은 법이 지향하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법은 정의를 세우는 것, 모든 이들에게 공평함을 보장하는 제도인 것이다. 그래서 ‘법 앞에 모든 이들은 평등하다.’ 그리고 ‘사회가 있는 곳에, 법이 있다.’(Ubi societas, ibi ius : Where there is society, there is a law.)


그 법을 사용해 행위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죄의 무게에 따라 형량을 정하는 것이 ‘판사’라는 존재이다. 요즘 이 나라의 판사들은 참 피곤할 것 같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논란이 될 사건을 맡은 판사는 어떤 판결을 내리든 그것이 못마땅한 무리들에 의해 비난당하고, 발가벗겨지고, 모욕을 당하기 일쑤다. 학창 시절, 사회 시간에 법에 관한 얘기를 듣다가 판사는 법과 양심에 의해 판결한다는 말에 잠시 갸우뚱했던 적이 있다. 판사가 법을 다루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그의 양심으로 판단한다니! 판사는 지극히 양심적인 사람이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뭔가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판사는 사람의 인신을 구속할 수도, 극단적인 처벌을 내릴 수도 있는 존재이다. 사법 시험을 보고(지금은 달라졌지만) 연수원 생활을 하고 나온 젊은 판사가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때론 너무도 복잡한 삶의 궤적을, 법이라는 제도를 가지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과연 최선일 수 있을까? 수술하는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는 환자처럼, 죄 보다도 판사의 양심 때문에 더 불안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최근 유튜브에 올라온 미국의 판사들과 그들의 특이한 판결에 관한 영상들을 본 적이 있다. 쓰레기통에 강아지를 버린 젊은 여성에게 감옥에 가는 대신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통에서 버려진 강아지와 똑같은 경험을 하게 한 판결,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점원의 얼굴에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는 갑 질을 한 피의자 얼굴에 똑같이 스프레이를 뿌리게 한 판결, 택시비를 내지 않고 달아난 사내에게 48시간 이내에 48km를 걷도록 한 판결, 숲에 무려 35마리의 고양이를 유기한 사람에게 그 숲 속에 홀로 남겨진 고양이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고통을 똑같이 느껴보라는 판결. 마치 고대 함무라비 법전의 구절처럼 ‘눈에는 눈’ 식의 판결들이 우습기도 했지만 왠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인상 깊었던 한 여판사의 모습은 단호했다. 미국 미시간 주 법정의 로즈메리 아킬레나 판사. 그녀는 2018년, 무려 156명의 여자 체조선수를 성추행했던 체조 코치의 재판에서 그가 제출한 탄원서를 훑어보더니 테이블 위에 집어던지며 그에게 2,100 개월 형을 선고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당신에게 이러한 벌을 내린 것은 판사로서 나의 영예이고 권한입니다... 당신은 감옥에서 결코 나올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판결은 내가 내리지만 다음번 판결은 신이 내릴 것입니다.” 추상같은 그녀의 판결은 법의 엄중함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그녀의 판단과 양심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 다른 판사는 내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한 알코올 중독자가 몇 년 전 음주운전으로 재판을 받고 보호관찰로 금주의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의 소변검사를 통해 그가 금주 명령을 어기고 있었으며 게다가 거짓을 말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루 올리베라 판사는 그의 행동에 대한 대가로 구치소에서 하룻밤을 지내도록 명령한다. 그런데 그 사내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었던 특전사 출신으로 당시 작전 중에 동료 병사들과 함께 탄 차량이 개울에 빠져 물에 잠겼던 경험이 있었다. 다른 전우들은 모두 익사했고 그만이 구조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폐소 공포증에 시달렸고 구치소의 좁은 독방은 결코 참아낼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루 판사는 그가 갇힌 구치소 독방으로 들어가 그와 함께 밤을 지냈다. 두 사람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젊은 시절을 얘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다. 사내는 그날 밤 치유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유튜브의 얘기는 여기 까지지만 내가 읽은 또 한 사람의 판사 이야기가 있다. 뉴욕의 라과디아 공항(La Guardia Airport)은 바로 피오렐로 라과디아 판사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그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 동안 뉴욕 시장을 세 번씩이나 역임하기도 했는데 늘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고 따뜻하게 해 주어 '작은 꽃(Little flower)'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시장 재직 중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를 기념하기 위해 공항에 그의 이름을 붙이게 되었던 것이다. 라과디아 판사는 빵 한 덩이를 훔친 어떤 노인의 재판을 맡게 된다. 평생 선량하게 살아왔으나 너무도 가난하여 사흘을 굶다가 빵을 훔친 이 현대판 장발장의 이야기는 너무도 눈물겨운 것이었다. 얘기를 듣고 난 라과디아 판사는 마침내 이렇게 판결을 내린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할지라도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법대로 당신을 판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노인의 사정을 동정한 방청객들이 한숨을 짓는 가운데 판사는 이렇게 덧붙인다.


"이 노인은 이 곳 재판정을 나가면 또다시 빵을 훔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노인이 빵을 훔친 것은 오로지 이 노인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이 노인이 살기 위해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방치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10달러의 벌금형을 내리겠습니다. 동시에 이 법정에 앉아 있는 여러 시민들께서도 십시일반 50센트의 벌금형에 동참해주실 것을 권고합니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한다. 판사의 판결문은 그 어떤 문서보다도 무겁고 엄중하다. 그것은 오로지 법과 양심만으로 다른 인간의 인신을 구속하고, 때론 극단의 형벌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때론 감정이 이성을 앞서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판단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실수와 잘못이 용인되지 않는 직업이 판사이다. 하물며 정치적인 이유로, 개인적 연고로, 부당한 이유로 판결을 훼손하는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만큼 판사의 직은 두렵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판사의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만큼 판사는 자신의 판단에 신중을 기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엄격하고 무사(無私)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시중의 여론에 흔들리고, 정치적 압박에 굴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법의 정당하고 바른 적용을 위해 스스로를 연마해야 한다. 그리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높은 기준을 스스로에게 세우고 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한 인간의 죄를 판단하는 것은 현실 속에서의 판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음의 판결은 신에 의해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진심으로 판사들을 응원한다. 어려운 결정을 홀로 내려야 할 때 얼마나 부담스럽고 얼마나 외로울까. 우리의 판사들이 굳은 마음으로 용기 있게 자신의 책무를 다하기를 함께 응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최소한 양심의 힘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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