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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12. 2020

결혼-다른 이름의 사랑

스스로 원해서 하는 복종

“결혼은 사랑의 종말이다.” 중세 서양의 결혼관이다. 그래서 궁정의 아름다운 백작부인들은 사랑 없는 결혼생활의 외로움 속에서 기사들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육체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 사랑이었다. 당시의 권력자들은 이들의 사랑을 용인한다. 기사들이 사랑하는 백작부인을 위해 전쟁터에서 용맹을 떨치고 공을 세우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의 충성심을 높이고, 평화 시의 방종을 막기 위해 궁정의 여인들을 이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은 언제나 비극으로 끝난다. 그리고 백작부인의 결혼도 파국으로 끝난다. 역사적으로 사랑과 결혼의 관계는 순조롭지 않았다. 19세기 자유연애가 인정된 후에도 결혼은 사랑과 무관하게 이루어졌다. 가정은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에 그칠 뿐이었고, 결혼은 가족의 전통과 명예에 따르고 있었다. 오늘날 인도, 파키스탄 등지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명예살인’은 가족의 뜻을 거스르는 사랑에 대한 처벌이다. 여자의 가족이 집안의 명예를 위해, 딸의 결혼으로 얻어지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자식의 목숨까지도 빼앗는다. 가족의 뜻이 결혼의 조건이었다. 그렇게 근대에 이르기까지 결혼은 종종 사랑과 무관하게 이루어졌다.    


자발적인 복종     


그러나 독일의 시인 괴테는 결혼의 전제는 사랑이라고 믿는다. “결혼은 스스로 원해서 하는 복종,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행위. 어찌 사랑 없이 가능하겠는가?” 사랑에 의해 맺어진 아름답고 숭고한 남녀의 결합.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과 그의 아내 배릿 브라우닝(Elizabeth Barrett Browning)의 사랑은 감동적이다. 배릿 브라우닝은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가졌지만 소아마비에 척추장애까지 겪고 있었다. 외출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만남조차 거의 없었던 그녀는 깊은 고독과 단절감 속에 살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사랑이 찾아온다. 6살 연하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을 만난 것이다. 연민이나 동정이 아닌, 오직 사랑만으로 마흔 살 노처녀이자 장애인이었던 그녀에게 브라우닝은 끈질기게 구애한다. 마침내 그녀는 브라우닝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녀의 장애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결혼을 반대한다.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이탈리아 피렌체로 떠나 그곳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평생을 부부로 보낸다. 배릿은 남편에게 보내는 시에서 자신의 깊은 사랑을 고백한다.     


“잃은 줄로만 알았던 사랑으로/ 나의 한평생 숨결과 미소와 눈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신의 부름을 받더라도/ 죽어서 더욱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사랑의 힘으로 고독의 암흑에서 벗어난 그녀는 죽음조차 막지 못할 헌신과 복종을 시를 통해 바치고 있다. 그 사랑의 시에 대한 로버트 브라우닝의 대답은 모든 부부들의 약속이다. “나와 함께 천천히 늙어갑시다! 좋은 날들은 뒤에 남겨져 있어요.”    


불가능의 가능    


사랑으로 맺어진 두 사람의 결합이 결혼이라면, 그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것일까? 미국 코넬 대학의 인간행동연구소가 5,000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2년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발견한 사실은 서로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기간이 짧으면 15개월, 길어야 30개월이라고 한다. 결국 사랑의 열정은 한시적이라는 것이다. 평생을 함께하는 결혼 생활 중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는 기간이 길어야 3년도 되지 않는다니! 그러면 그 이후는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 흔히 얘기하듯 정으로 살까? 자식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이유가 사랑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사랑 없이 이루어지는 결혼이 행복할 수 있을까? “환상으로 사는 사람은 환멸로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사랑과 결혼이 주는 환상은 현실 속에서 자주 환멸을 초래한다. 그러나 결혼의 환상, 즉 서로 여전히 사랑한다는 환상은 결혼이라는 현실을 유지하는 근거가 된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리다(Jacques Derrida)는 ‘불가능의 가능’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개념은 어떤 것의 밖에 있는 것이 그것의 존재 이유가 된다는 의미이다. 결혼을 하면 사랑은 사라진다. 그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사랑은 결혼 밖에 있다. 그러나 밖에 있는 이 사랑이 결혼을 유지시키는 힘이 된다. 서로가 뜨겁게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결혼생활의 패러독스이다. 그것은 환상처럼 보이지만 현실을 유지하는 힘이다. 그리고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게 하는 ‘불가능의 가능’이다. 결혼은 젊은 시절의 뜨거운 사랑이 사라진 뒤에도,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믿고, 함께 늙어가고 있음에 행복을 느끼는 그런 환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애증의 삶   

톨스토이와 소피아

미국 감독 마이클 호프만(Michael Hoffman)의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The Last Station)은 노년을 맞은 대문호의 말년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는 악처로 유명했다. 남편을 숭배했던 제자들을 질투하고 유산문제로 자살 소동까지 일으킨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고통 속에서도 그녀를 떠나지 못했다. 영화는 톨스토이가 마침내 아내와의 불화로 가출하고, 일 년 뒤 한 기차역에서 죽어갈 때까지의 궤적을 주변 사람들의 시각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영화에서 소피아는 여전히 위선적이고 고집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녀는 톨스토이의 악필을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를 여섯 번이나 옮겨 쓴 그의 아내였다. 두 사람이 함께 한 48년의 세월, 그것은 부부만이 알 수 있는 수많은 기억과 추억의 시간이었다. 호프만 감독은 영화 속에서 톨스토이와 소피아에게도 모든 것을 서로 나누고 사랑과 헌신의 마음으로 함께 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부부의 삶은 그런 것 같다. 누구도 평생을 사랑했다고 자신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사랑과 미움, 연민과 동정, 진실과 위선, 애증이 교차하면서 서로가 되어가는 것이 부부인 모양이다.    


사랑과 대화    


사랑이 사라진 결혼에 대한 환멸은 극복될 수 있을까?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찰나의 사랑을 동경하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독신을 갈망한다. 그러나 결혼은 단지 삶의 한 가지 조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두 사람 사이의 영혼의 계약이고, 함께 쓰는 책이다. 첫 장은 시(詩)이지만, 나머지 장들은 산문들인 무미건조한 책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여성학자 보부아르의 수 십 년에 걸친 계약결혼은 결혼에 회의적인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역설적으로 결혼의 의미를 알려준다. 보부아르는 한 친구에게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을 유지하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다른 사람들의 비난, 서로의 남녀관계에 대한 오해와 증오가 큰 이유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흔히 생각하듯이 혼전의 결혼 연습이나 일회적인 실험 결혼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철학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르트르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서로 다른 두 주체성의 결합이므로 부부로서의 사랑과 대화는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1929년 계약결혼을 하면서 그렇듯 취약한 사랑과 대화를 지켜내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다. 두 사람 모두 50년이 넘는 세월을 스스로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추구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사르트르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보부아르는 그와 긴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그와 보낸 그 오랜 세월이 몹시 아름다웠다고 회상한다. 결혼은 육체의 결합에 의한 의무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들은 결혼 후 잃어버릴 사랑과 대화를 지켜내는 새로운 결혼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아니지만 우리는 결혼을 통해 그들이 추구했던 것을 똑같이 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사랑을 잃지 않고, 두 사람만의 대화로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결혼이기를 바란다.     

  

“결혼은 하늘에서 맺어지고 땅에서 완성된다.”고 한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인연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다. 결혼을 하고 부부로 사는 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괴테의 말처럼 ‘결혼은 진정한 의미에서 연애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애 같은 결혼 생활, 사랑, 헌신, 복종 그리고 설렘으로 가득한 삶보다 성공한 삶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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