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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16. 2020

음악-영혼의 소리

아름다움은 신의 미소, 음악은 신의 목소리


음악은 우리의 감정에 직접 호소한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을 움직인다. 때론 환희와 열정, 때론 슬픔과 외로움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음악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저 심연 속의 암흑과 침묵, 영혼의 박탈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음악의 발견은 영혼의 발견이었다.  


음악의 신비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홀랜드(Josiah Gilbert Holland)는 “음악은 영혼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하고, 새로운 상상력으로 채워준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바흐와 모차르트를 사랑했다. 뛰어난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에게 있어 모차르트의 음악은 “우주의 내적 아름다움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일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음악과 자연과 신은 그의 마음속에서 하나로 이어진다. 복잡한 과학의 문제에 부딪힐 때면, 그는 늦은 밤에라도 부엌으로 나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리고 연주 중 갑자기 “이제 알겠어!”라고 외치곤 했다. 음악은 그의 창조적 사색의 일부였던 것이다. 우주의 신비를 푸는 작업은 그에게 있어 음악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일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는 위대한 과학자이기 이전에 음악을 통해 우주의 조화로움과 신비함을 깨닫고 있었다. 한 번은 바흐의 음악을 합주하던 중, 함께 있던 연주자가 그의 연주에 감탄하여 물었다. “박자를 세고 있나요?”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요. 내 핏속에 들어 있지요.” 음악은 그의 일부였고, 창조의 원천이었다. 그렇게 그는 음악과 우주의 신비를 풀어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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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시간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완성되고, 그 시간 속에 긴 여운을 남긴다. 음악 속에서 우리는 시간을 여행한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되살린다. 어린 시절 학교 교정, 친구들, 가슴 저렸던 이별, 그리고 가슴에 품었던 열정, 희망, 동경, 추억들을 떠올린다. 시간을 돌려놓는 음악의 힘이다.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들었던 음악이 되돌려주는 향수,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과거를 추억한다. 시간이 흐르듯 음악도 흐른다. 그리고 그 지나간 시간들은 함께 흐른 음악 속에 알알이 박힌다. 음악 속에 시간이 잉태되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것은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떠나는 여행과도 같다.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프랑수와 를로르(Francois Lelord)의 심리소설 ‘꾸뻬 씨의 시간 여행’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은 시간과 음악에 대한 관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음악은 시간에 관한 아주 훌륭한 생각들을 제공해준다네. 어떤 음이 자네를 감동시키는 건 오직 자네가 그 이전의 음을 기억하고 그다음의 음을 기다리기 때문일세. “ 음악은 인생과도 같다. 그 의외의 탄생, 그리고 잔잔한 전개와 격렬한 클라이맥스, 완만한 곡선으로 하강하다가 결말을 향하는 그 모든 과정이 삶과 음악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삶과 음악은 직선적이지 않다. 지나간 음을 기억하듯이 우리는 과거의 날들을 추억하고, 다음의 음을 기다리듯이 미래를 열망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음악은 시간이 만드는 세계 속을 떠다니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한다. 음악을 즐기듯 삶을 살아야 할 이유이다. 음악 같은 인생.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렬하게, 고음의 피치를 향해 치솟다가 다시 완만한 부드러움, 그렇게 우리는 인생이라는 음악을 연주하고, 그 음악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음악의 의미 


음악은 아름다운 가사로 의미를 더하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의 생명은 선율과 화음이다. 우리의 감정을 건드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여러 개의 음들의 이루어내는 선율의 흐름이다. 음악은 소리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소리 하나하나는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피아노의 청명한 소리를 듣고 있자면 시냇물이 흐르고, 새들이 지저귄다. 바이올린은 봄철 새싹이 피어나듯 경쾌하다가, 실연의 아픔으로 변해 가슴을 찌른다. 눈 덮인 초가집처럼 따뜻해 보이던 첼로와 호른의 저음이 어느새 깊은 사색의 골짜기로 인도한다. 악보와 악기와 연주자들은 그렇게 한 편의 음악이 던지는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음악은 영혼의 은밀한 장소로 파고든다.” 플라톤의 말이다.   


선율이 흐른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음들을 따라 우리의 마음도 흐른다. 노랫말은 가끔 음악에 대한 우리의 감성을 제한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노랫말은 우리의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깨워 음악에 새로운 감동을 첨가하기도 한다. 성악가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의 노래로 친숙했던 ‘기차는 8시에 떠나고’는 그리스의 혁명투사이자 작곡가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의 작품이다. 독재정권에 저항해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한 한 젊은 청년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카타리니로 떠나기로 한다. 그와 만나기로 한 11월의 어느 날, 여인은 기차역에서 사랑하는 청년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여인은 눈물 속에 8시 기차를 탄다. 그 모습을 숨어 지켜보는 남자는 억압받는 민중을 두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떠날 수는 없었다. 이 슬픈 사랑의 이야기는 그 아름다운 선율에 얹혀 진한 감동과 슬픔을 전달한다. 11월, 아직 쌀쌀한 날씨 초저녁의 어스름이 외로움을 더하고, 그녀는 설렘과 왠지 모를 불안감에 철로 주변을 서성인다. 사랑하는 이는 오지 않고, 차가운 기차 문의 손잡이를 잡고 여인은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슬픈 음률, 얼어붙은 가슴인들 어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기차가 떠난 플랫폼에 남겨진 그 진한 고독감. 음악은 이야기이다. 수없이 많은 의미들을 담은 이야기. 그래서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그 감동의 한가운데, 음악이 흐른다.     


음악을 통한 정화    


음악은 우리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역동성을 더한다. 잠에서 깨어나 미국의 팝가수 캣 스티븐스(Cat Stevens)의 ‘아침이 밝았네.’(Morning has broken)를 들으면 노래의 가사처럼 태초의 첫 아침을 찬양하고 싶어 질 만큼 새로움으로 온몸이 채워짐을 느낀다. 비발디(Antonio Vivaldi)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四季) 중 ‘봄’을 들으면 생명의 탄생, 그 환희를 경험한다. 헤비메탈은 어떤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딥 퍼플(Deep Purple)의 그 열정과 강력한 비트를 기억하는가. 세계 3대 테너로 알려진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와 포크 싱어 존 덴버(John Denver),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와 스팅(Sting)의 크로스 오버, 지미 핸드릭스(Jimi Hendrix)와 산타나(Carlos Santana)의 기타 연주,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과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의 피아노 연주... 세상의 모든 음악은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우리의 영혼을 뒤 흔든다. 그렇게 우리는 음악을 통해 감정의 찌꺼기들을 정화한다. 음악을 통한 것보다 더 직접적인 마음의 순화가 있을까. 그저 잠시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음악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만으로 우리는 번민을 내려놓고, 슬픔을 이기고, 절망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충만해진다. 음악을 통한 카타르시스는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다. 음악은 우리의 정신을 정화하고 병든 마음을 치유한다. 음악은 무엇보다도 직접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공명한다. 음악은 사랑의 묘약이고, 고뇌하는 젊은이의 멘토이며, 인간이 만든 소리 중 가장 아름다운 소리이다. 그것은 심지어 우리의 공간마저 변화시킨다. 고즈넉한 저녁 들녘에 따뜻함을 주고, 아침 해 떠오르는 수평선에 장엄함을 더한다. 그리고 외로움으로 가득한 당신의 공간을 감미로운 사랑으로 가득 채운다. 그렇게 음악을 통해 우리는 위로받고,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소리에 온 몸을 맡기고 행복해진다.     


음악은 소통이다. 모든 행위의 배경에 음악이 있다. 교회당의 경건한 찬송, 애국심에서 외치는 응원의 노래 그리고 무당의 신들린 북소리까지 모든 것이 교감을 위한 음악이었다. 아이는 태아의 상태에서 엄마의 심장박동을 듣는다. 최초로 듣는 생명의 음악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 내면에 있는 갈망, 그 의지를 음악이 형상화한다고 믿었다. 음악은 그렇게 우리의 주변에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왔고, 위안과 기쁨을 주어왔다. “아름다움은 신의 미소이고, 음악은 신의 목소리”라 한다. 그 감동의 선율과 함께 우리는 가끔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침묵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침묵마저도 음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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