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원해서 하는 복종은 복종이 아니지요. 그것은 사랑과 존경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무언가에게 진심으로 원해서 복종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신의 섭리에 대한 복종은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복종은 헌신입니다. 자연의 장엄함에 대한 복종은 경외심입니다. 예술에 대한 복종은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입니다. 원칙에 대한 복종은 정의입니다. 진리에 대한 복종은 자유입니다. 인류에 대한 복종은 평화입니다. 법과 규칙에 대한 복종은 질서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복종은 자신을 버리는 희생 없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조타장치에 복종하지 않는 배는 암초에 복종하게 된다고 합니다. 복종해야 할 많은 것에 감사의 마음으로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강한 것에 대한 굴종, 권력에 대한 굴복은 수치입니다. 두려움에 무릎을 꿇는 것은 비겁함입니다. 삶의 아주 짧은 순간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이기심에 복종하는 것은 배신입니다. 축척된 부는 삶의 종말과 함께 사라집니다. 명성도 아침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그런 것들을 위해 복종하는 것은 허무만을 남깁니다. 그러한 복종은 저항보다 쉽습니다. 그것은 라 보에시가 얘기한 ‘자발적 복종’에 가까운 것이죠. 즉 두려움에 빠진 인간들이 힘 있는 사람에게 복종하고 그들의 경멸과 멸시를 사랑과 유대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니체는 ‘복종’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항-그것은 노예의 특징이다. 복종을 그대의 특징으로 만들라. 당신의 명령조차도 복종처럼 하라.” 스스로 선택한 복종의 마음은 배려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화합을 위한 것입니다. 영어에 ‘stoop to conqu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허리를 굽혀 승리한다.’라는 뜻이죠. 궁극적인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몸을 굽힌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같은 ‘복종’이라는 낱말도 이렇게 큰 차이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언어입니다. 그래서 언어를 불확실한 것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