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죽음 뒤의 영광

20세기 초반의 초상: ‘변신’ ‘심판’ ‘성’

by 최용훈

체코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임종의 자리에서 자신의 모든 글을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친구인 맥스 브로드는 그의 작품들을 지켜냈고 그의 뛰어난 단편과 장편 그리고 개인적 서신들을 출간했다. 카프카의 삶은 우울했다. 1883년 프라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카프카는 6남매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한다. 여섯 살 된 해에 두 남동생이 사망하고, 그의 세 여동생들은 2차 대전 중 폴란드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사망한다.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의 아버지는 지독하게 독선적인 인물이었다. 반면 어머니는 너무도 소심해서 종종 아버지와 충돌했던 어린 아들의 편을 들어주지 못했다. 이러한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는 그의 삶과 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프라하 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카프카는 생애 대부분을 보험업에 종사했는데 그는 자신의 일을 혐오했다. 그의 대표작인 ‘변신’(Metamorphosis, 1915)의 주인공 그레고르는 의류회사의 세일즈맨 업무에 늘 불만이다. 출장을 위해 기차 시간에 늦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고, 짧은 틈을 이용해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며, 상대할 고객들은 계속 바뀌어 끊임없이 대인 관계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사장에게 거액의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빚을 청산할 때까지는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다.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커다란 벌레로 변해버린 것을 깨달은 그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다시 잠을 청한다. 그때 제일 먼저 찾아온 사람은 결근을 비난하는 직장의 매니저였고, 그의 비난을 참지 못하고 흉측한 몰골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지팡이와 둥글게 만 신문지로 거칠게 그를 방에 몰아넣은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카프카의 정신 속에 각인된 직업과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기억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생계를 꾸려가며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밤이 되면 그는 책상에 앉아 한껏 상상력을 높여 허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1923년 마흔의 나이에 카프카는 베를린에서 전업 작가로 생계를 꾸려보려 결심했지만 그 직후 불행히도 폐결핵에 걸려 이듬해인 1924년 마흔 하나의 나이에 세상을 등지게 된다. 이 불행한 천재는 살아서는 소설가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프라하를 찾은 수많은 여행객들이 카프카 박물관에 들러 이 현대소설의 거장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있지만 그의 대표적 소설 아메리카(Amerika), 성(The Castle), 심판(The Trial) 등은 모두 그의 사후에 출간되었다.


직장생활에 대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카프카는 자신의 일에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사교성도 좋았고 유머감각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사적인 삶은 평생을 괴롭힌 질병으로 인한 우울과 불안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이로써 대인관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30대 초반에 카프카는 도라 다이안만트(Dora Dyanmant)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도 유대인이었고 카프카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사상을 옹호하고 있었다. 카프카의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는 가운데에서도 두 사람은 베를린에서 함께 동거를 시작한다. 둘의 생활은 카프카의 쇠약한 건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실 폐결핵에 걸리기 이전에도 카프카는 건강했던 적이 없었다. 질병에 대한 끝없는 스트레스로 그는 편두통, 종기, 우울증과 불안감 그리고 불면증까지 겪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프라하로 돌아가는데, 카프카의 폐결핵이 심해지자 비엔나의 결핵 요양소로 옮겨간다. 도라는 결혼한 남편은 아니었지만 카프카가 오스트리아의 한 병원에서 숨질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카프카는 생계를 위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에 몰두한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또 다른 한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그의 문학적 재능을 믿어주었던 오랜 친구 맥스 브로드였다. 그는 카프카의 생전에도 친구를 지지해주었지만 사후에는 그의 문학적 후견자가 되어 그의 작품을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변신(Metamophorsis)

카프카의 가장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 ‘변신’은 1912년에 완성해 1915년에 출간되었다. 이 이야기는 프라하의 비타바 강과 그 위에 놓인 유료 교량이 바로 내다보이는 카프카의 3층 방에서 집필되었다. 1912년에 쓴 그의 일기 내용은 창밖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나는 오랜 시간 창가에 서 있곤 했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 보이는 그 다리 위에서 뛰어내려 통행세를 받는 징수원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


‘변신’ 이후 1913년 단편소설집 ‘중재’(Mediation) 그리고 1914에서 1915년 사이에 쓴 소설 ‘심판’에 등장하는 우화 ‘법 앞에서’(Before the Law)가 이어진다. 악화되는 건강에도 불구하고 카프카는 집필을 계속해 1916년 아버지와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판단’(The Judgement)을 완성한다. 1919년에는 ‘죄수의 유형지’(In the Penal Colony), ‘시골의사’(A Country Doctor)가 동시에 집필되었다. 1924년 투병 가운데에서도 카프카는 ‘굶주린 예술가’(A Hunger Artist)을 완성하는데 그의 말기 작법을 나타내는 간결하고 분명한 문체를 보여주고 있다.


1924년 죽음을 앞둔 카프카는 극도의 자기 의심 속에 빠져있었다. 그는 자신의 미 출간 작품들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친구이자 출간 대리인이었던 맥스 브로드는 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1925년 소설 ‘심판’을 출간한다. 이 어둡고 편집증적인 작품은 카프카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은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이야기는 조셉 K라는 사람의 삶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는 자신도, 독자도 알지 못하는 어떤 범죄에 대해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것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입증해야 하는 현대인의 알레고리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듬해인 1926년 ‘성’이 출간되는데 이 작품은 얼굴 없는, 권위적 관료주의에 대항하는 주제를 담고 있으며, 단지 K라고만 알려진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의 마을을 지배하는 정체불명의 당국과 맞서고 있다.


같은 해 등장한 ‘아메리카’는 가족에 의해 미국에 보내진 카를 로스만이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국에서 카를은 여행하는 곳 마다 그의 순진무구하고 소박한 심성에 상처를 입는다. 이 작품에서는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지만 그것은 또한 여행을 좋아하고, 세상을 보고 싶어한 그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1931년 브로드는 카프카가 14년 전에 써놓았던 단편 ‘중국의 만리장성’(The Great Wall of China)을 출간한다.


카프카가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이름을 알고 있던 독자들은 소수였다. 하지만 그의 책들은 2차 대전 무렵 대중들의 관심를 받게되고 카프카는 그로인해 소설가로서 명성을 얻었을 뿐 아니라 그의 작품들은 독일어 문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전쟁의 황폐함 속에서 서구의 독자들은 카프카가 그려놓은 그 황량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1960년대 동유럽의 공산화 이후에는 카프카의 ‘성’에 등장하는 얼굴 없는 지배 기관들이 현실의 세상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됨으로써 ‘카프카에스크’(Kafkaesque; 카프카적인, 부조리하고 절망적인)라는 단어가 영어사전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동유럽이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하고 공산당의 억압적 통치를 위한 비밀경찰을 운영했던 정치현실이 현대의 독자들에게 카프카의 작품을 연상케 했던 것이다. 다소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지만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의 교수였던 문학평론가 얀 코트(Jan Kott)가 ‘셰익스피어, 우리들의 동시대인’(Shakespeare, Our Contemporary)이라는 비평서를 내놓았을 때, 비 영어권 세계의 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폴란드의 공산체제 아래서 살던 대중들의 삶이 셰익스피어의 비극 속에 표현된 인간의 불안과 공포심을 반영하고 있음을 지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시대, 한 장소의 감정은 시간을 초월해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88년 소설 ‘심판’의 수기 원고가 경매에서 198만 달러에 팔린다. 현대의 원고 중 최고가를 기록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카프카가 지니는 매력과 위상을 증명하였다. 그 원고를 구입한 독일의 서적상은 경매가 끝난 후 이렇게 언급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20세기 독일어로 된 최고의 작품일 것입니다. 독일이 가져야만 하는 것이죠.” 카프카는 무명의 세월 속에 병마로 고통을 받았지만, 20세기 서양인들이 경험했던 그 절망과 환멸의 감정을 정확히 포착하여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세상은 ‘변신’을 겪고 있었고, 전쟁과 독재의 ‘성’에 갇혀 ‘심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베르나르 뷔페, 구상과 재현의 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