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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29. 2020

청포도처럼 익어가는 그리움

이육사,  청포도

청포도(靑葡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Green Grapes

          by Lee, Yuk-sa    


July at my hometown is the season

For green grapes to ripen     


The legends of this village grow in full bearing,

The distant skies dream and come in one by one    


The blue sea under the heaven is its breast opening

A white-sail boat is softly flowing in   


Then a welcome guest is said to be coming

In bluish hemp cloth, tired    


Greeting and treating him with those grapes

I don't care if I have my two hands soaked.    


Boy, have a ramie-fabric towel ready

in a silver tray on our table.    

(Translated by Choi)


20세기 전반 한국의 시인들은 아름다운 시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들의 시는 서양의 이미지즘 시에서 보이는 간명함이 두드러집니다. 시적 긴장감과 그것의 해소를 통한 통일성과 명징성은 시인이 그려내는 세상에 대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마음속에 품었던 아스라한 감성을 고스란히 되살려 놓습니다. 그들의 시 곳곳에 일제 강점기의 나라 잃은 설움이 드러나기도 하고, 한 인간의 사랑, 외로움, 절망과 좌절 그리고 의연한 결의까지 다양한 감정들이 그려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대단한 현대시의 유산을 가지고 있음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초여름 청포도가 익어가는 고향 마을,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과 동무들이 함께 살아왔던,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그 따뜻한 마을을 기억합니다. 산 너머로 저 멀리 푸른 하늘이 꿈꾸는 아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그림 같이 펼쳐진 바다 위 흰 돛단배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싣고 오는 반가운 희망과 기대의 전령이었습니다. 대접할 것이라고는 주렁주렁 열린 청포도뿐이지만 툇마루에 앉아 달콤한 포도 알에 손을 적시며 서로 미소 짓는 그날이 얼마나 기다려졌던 지요. 어린 나는 하얀 모시 수건을 쟁반 위에 담으며 행복했습니다. 그 그리운 고향을 먼 곳 북경의 감옥에서 그려보던 시인의 가슴에도 보랏빛 핏물이 얼룩졌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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