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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27. 2020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끝없이 걸어가는 이제는 나의 땅, 너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Will spring come in a lost field?

                      by Lee, Sang-wha     


Not my land now – Will spring come in a lost field? 

With a shower of sunshine

Toward the horizon where the blue sky and the blue field meet

I just walked on and on through a parting-like paddy path.    


Heaven and field with your mouth closed, 

I don’t feel I am here by myself!

Did you lead me? who called you? As I feel oppressed, tell me.     


The wind whispering to my ear,

You don’t stop even a step, fluttering the train of dress.

A lark gives a welcome smile behind the clouds like a girl beyond the hedge.      


Thank God, well-grown barley,

With the rain falling after midnight

You washed your flowing tresses, making me refreshed, too.     


Though alone, I will happily go.

A good drain winding its way around the dry field

Sings a song to lull a baby, and flows alone with shoulder dancing.     


Don’t hurry me up, butterfly. 

I should greet cockscomb and other wild flowers

And see everything in the field where someone with castor-oiled hair was weeding.    


Give me a hoe.

On this soil, soft like a fat breast

I want to tread till I feel a dull pain in my ankle, and merrily sweat myself.     


Like a child on a riverside, 

My soul, endlessly running without a break

What are you looking for, where are you going, you make me laugh, answer me.     


With the smell of fresh greens all around my body,

Between the blue laugh and the blue sorrow mixed each other 

I was dragging myself all day long as if possessed by a spirit of spring.     


But, in this lost field, I might be deprived of spring. 

(Translated by Choi)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뜁니다. ‘빼앗긴 들’이라는 표현에 눈물부터 흐릅니다. 잃어버린 많은 것들, 사라져 버린 그 익숙한 것들. 우리는 이 땅에서 많은 것을 잃고 삽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눈에 담고, 가슴에 담아 그 느낌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나 홀로 걷는 이 긴 길이 얼마나 외로운지요. 하지만 이 길이 나만의 길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누군가 앞서 이 길을 걸었고, 이제 또 누군가가 이 길을 가겠죠. 불어오는 바람이 옷깃을 열고, 하늘의 종달새가 나그네의 걸음을 반겨줍니다. 논두렁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습니다. 나비를 쫓아 걸음을 서두르다가 문득 뒤돌아 들에 핀 맨드라미, 들꽃들과 인사합니다. 아! 어머니. 쪽 찐 머리에 아주까리기름을 바르고 허리 굽혀 김을 매시던 그분의 모습이 여전히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그리운 그분이 아끼셨던 이 땅, 나도 호미를 들고 땀 흘려 그분의 자취를 쫓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푸근한 가슴이 어른이 된 지금도 왜 이리 아쉬울까요. 내 허전한 마음이 여전히 무언가를 찾아 헤맵니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누가 알 수 있을까요? 하지만 들 풀 냄새로 온 몸에 추억을 담고 나는 끝없는 이 길을 걸어갑니다. 홀로라도 기쁘게 걸어가야죠. 그들이 걸어왔고, 누군가 걷게 될 이 길을 나는 사랑합니다. 지금은 나의 땅, 그리고 너의 땅이 된 이 아름다운 산하를 시인도 봄철의 밝은 기운과 함께 걷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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