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us cover our winter with your dragging trails.
(Translated by Choi)
파초는 남국(南國)의 식물입니다. 고려 때 중국을 통해 이 땅에 들어왔다고 하죠. ‘기다림’을 상징하는 파초는 생명력이 강해 찢기거나 휘어질망정 부러지지 않습니다. 꼭 우리를 닮았죠. 떠나온 어딘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면서도 우린 지금 있는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꿋꿋이 살고 있으니까요. 언젠가는 이곳도 떠나야 하겠지요. 그러면 새로이 찾은 그곳에서 또 지금의 이 자리를 그리워할 겁니다. 파초는 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떠나온 남쪽의 제 나라를 망연히 바라보지만 인생은 흐르는 구름처럼 기웃거리며 가고픈 그곳을 찾아 헤맵니다. 그래서 파초나 우리나 외로운 건 매 한가지입니다. 파초는 갑자기 뿌리는 소나기를 그리워하지만 우리는 나만을 바라봐주는 사랑을 목말라 합니다. 파초에 샘물을 붓듯 우리의 마음에는 꿈을 심습니다. 추운 밤이 되면 함께 부빌 가슴을 찾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에는 파초의 잎으로 서로를 가리고 따뜻한 고향을 찾아 떠나고자 합니다.
강원도 강릉 사천해수욕장 근처에 초허(超虛) 김동명(金東鳴·1900~1968)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습니다. 생가 앞 작은 뜰에 파초 한 그루가 해풍에 휘날립니다. 바닷가 해송들처럼 늘 그곳에 있을 것 같은 파초를 바라보노라면 남쪽의 고향을 그리는 그 마음이 전해집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 고향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 아련한 기억들, 익숙한 체온과 냄새 그리고 빛바랜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아! 파초의 꿈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그곳, 그 시절을 추억하기만 해야 하는 그 꿈은 너무도 가엽습니다. 시인은 그 가여운 꿈속에서 파초와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빼앗긴 산하를 함께 아쉬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