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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30. 2020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박인환,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박인환    


─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거의 모두가 미래의 시간 속에서 나타난다 ─ T. S. 엘리엇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와 우리들의 죽음보다도

더한 냉혹하고 절실한

회상과 체험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여러 차례의 살육에 복종한 생명보다도

더한 복수와 고독을 아는

고뇌와 저항일지도 모른다.    


한 걸음 한 걸음 나는 허물어지는

정적과 초연(硝煙)의 도시 그 암흑 속으로……

명상과 또다시 오지 않을 영원한 내일로……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유형(流刑)의 애인처럼 손잡기 위하여

이미 소멸된 청춘의 반역을 회상하면서

회의와 불안만이 다정스러운

모멸의 오늘을 살아 나간다.    

 

……아 최후로 이 성자의 세계에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그것은 속죄의 회화(繪畵) 속의 나녀(裸女)와

회상도 고뇌도 이제는 망령에게 팔은    

철없는 시인

나의 눈 감지 못한

단순한 상태의 시체일 것이다……    


If there were something alive

           by Park, In-whan    


"Time present and time past

 Are both perhaps present in time future. “  - T. S. Eliot     


If there were something alive

It would be reminiscence and experience

Colder and severer

Than my or our death.     


If there were something alive

It would be agony and protest

That would know revenge and solitude

Better than the life submitted to many slaughters     


Step by step I walk into the darkness of

That city filled with breaking silence and powder smoke...

Into meditation and endless tomorrows...

If there were something alive

We would live through the day of humiliation

That only gets in with scepticism and anxiety

Recalling the rebellion of the already burnt-out youth

To take the hands of a lover in exile.     


....... Ah, if, in this world of saints,

there were something alive

It would surely be a simple corpse of mine

With its eyes not closed

A thoughtless poet

Who sells to a devilish spirit

A naked woman in the painting, reminiscence and agony.....

(Translated by Choi)     


죽음, 회상, 체험, 살육, 복수, 고독, 고뇌, 정적, 초연, 암흑, 유형, 반역, 회의, 불안, 모멸, 속죄, 시체. 이 모든 어둠의 어휘들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삶과 소멸된 청춘의 기억은 이렇듯 처절한 어휘로 그려져야 하는 것일까? 무엇이 박인환이라는 이 젊은 시인을 이토록 허무주의에 빠지게 했던 것일까? 이 시는 1955년 출간된 그의 시집 속에 수록되었으니 1926년생인 그가 이십 대 후반에 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듬해 1956년 박인환은 서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다. 이 단명한 천재 시인은 인생의 꽃인 청춘의 마지막을 생의 마지막으로 대체하고 그 짧은 시간에 전쟁을 겪는다. 엘리엇을 사랑하고 모더니즘에 경도되었던 이 젊은 지식인은 시대의 아픔과 함께 결국 스러지고 만다. 그리고 시 속에서 ‘살아있는 것’을 가정법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20세기의 감정은 오든(W. H. Auden)의 시 제목처럼 ‘불안’(Anxiety)이었다. 그것은 세계 대전을 두 차례나 겪은 유럽의 감정이었지만, 일본의 식민지로 살았고, 두 번째 세계대전의 결과로 해방을 맞아 또다시 이념의 분열로 갈라진 반도의 젊은이들은 더욱 절박한 불안의 그늘에 쌓여있었을 것이다. 서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버린 시인의 시에 무슨 말을 더 더할 수 있을까? 철없던 이 젊은 시인의 속죄로도 세상은 정화되지 못하였다. 죽어서도 눈 감지 못한 이 슬픈 시인의 아픔을 어찌할 것인가. 그가 내뱉고 있는 이 20세기의 어휘들은 언제까지 우리를 짓누르고 있을 것인가.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아, 무정한 20세기, 잔인한 모더니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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