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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01. 2020

반성하지 않는 절망

김수영,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 많은 것들

절망(絶望)

         김 수 영     


風景(풍경)이 風景(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速度(속도)가 速度(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拙劣(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救援(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絶望(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Despair

     by Kim, Soo-young     


Just as landscape never blames landscape

Mold never blames mold

Summer never blames summer

Speed never blames speed

Meanness and shame never blame themselves

So the  wind comes from elsewhere

Salvation comes out of the blue

Despair never blames itself to the end

(Translated by Choi)     


삶의 굽이굽이에서 어찌 후회와 회한이 없을까요. 어찌 보면 우리의 일상은 늘 실수와 잘못 의 연속이고 그 때마다 우린 돌아보며 부끄러워하고 안타까워합니다. 남에게 상처준 말, 나도 모르게 우쭐거렸던 순간,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배신했다는 자책. 그렇게 어리석게 행동하고도 자신의 저열함을 모른 채 남의 이해와 용서만을 구합니다. 풍경이나 곰팡이나 반복되는 계절,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의 속도들은 자신의 의지로 바뀔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자신들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눈에 들어오는 많은 것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곳에, 그렇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죠. 달라야만 합니다. 깨달음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킵니다. 그렇게 스스로 바뀌고, 성숙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나는 얼마나 졸렬하고, 수치스러운 존재인지요.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무너지게 했습니다. 의지와는 달리 왜 이렇게 되었는지 자책과 번민으로 괴로워합니다. 왜 이리 모자란 인간이 되었는지 가슴 전체가 아파옵니다.     


바람은 내가 원하는 곳에서 불어오질 않았습니다. 절절한 반성이 없는 곳에서 어떤 희망이 생겨날 수 있을까요? 깨달음과 변화가 없는데 무엇을 감히 바랄 수 있을까요. 그런데 날 붙잡아주는 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죽음만이 답일 수 있을까요?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육체의 무기력이 구원일 수 있을까요? 그렇게 수치와 비열함으로 살아왔던 삶을 마지못한 동정과 어쩔 수 없는 용서로 마감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그래서 절망합니다. 반성하지 못하는 좌절과 비탄, 깨닫지 못한 회한, 그로 인한 이 깊은 절망감으로 결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애써 자신의 모습에 눈 감아 버리는 것이겠죠. 김수영 시인은 그러한 우리의 나약함을 시에 담아 그저 바라봅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듯 스스로를 찾아내지만 여전히 자신의 모습은 아닌 것 같으니 어쩌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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