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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01. 2020

그곳을 잊을 수 있을까요?

정지용, 향수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Nostalgia

     by Jeong, Ji-yong     


Around the eastern end of a huge field

A stream, murmuring old tales, winds its way out,

A brindled ox moos at dusk in its golden idleness,

Can I forget the place even in a dream?     


When the ashes in a brazier cool off

The sound of the night wind is galloping like a horse,

My old father, feeling drowsy,

Lays his head on a straw pillow.

Can I forget the place even in a dream?      


My mind, growing from the earth

Missing the blue light of the sky

Searching for the arrow darting aside

Gets fully drenched in dewdrops on the grass.

Can I forget the place even in a dream?      


My young sister flying her hair braided behind the ears

Like dancing night waves at the sea of legends

And my wife, homely and plain,

Barefooted all the year round,

Gather fallen ears of grain with the sun behind their backs.

Can I forget the place even in a dream?     


A cluster of stars in the sky

Move to the unknown castle of sand,

Over a humble roof passes an autumn crow cawing,

Sitting around the dim light, we whisper to each other.

Can I forget the place even in a dream?   

(translated by Choi)   


기억 속 옛 고향의 모습을 어찌 이리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한국인의 마음속에 간직된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가 계시는 곳입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 개천에 그물을 치고 친구들과 물고기를 잡던 그곳입니다. 들에 벼가 익고, 소 울음소리 들리던 그 추억의 장소입니다. 이슬 젖은 풀 섶을 헤치고 다니던 어린 소년들은 이제 꿈에서나 그것을 보겠지요. 시인은 다 식은 화롯불 옆에서 낮 동안의 농사일에 지쳐 잠드신 아버지, 사철 발 벗은 모습으로 종종걸음 치던 아내와 이삭 줍던 어린 누이를 기억합니다. 아스라한 그 기억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한 밤 별들조차 지면 온 가족은 희미한 전등 아래 모여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더 이상의 평화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행복이었죠. 이제 우리는 그런 평화와 행복을 어디에서 찾고 있을까요. 낭만주의는 과거를 그리워하죠. 이상화된 과거를 그려내고 싶어 하니까요. 그런 낭만을 이제 도시의 환한 불 빛, 회색의 빌딩들 사이에서도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추억이나 아름다움은 마음이 만드는 것이니까요. 형형색색의 불빛이 비추는 한강의 다리들도 누군가에겐 분명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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