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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04. 2020

의자 같은 삶, 세상

이정록, 의자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에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것이여    


A Chair

      by Lee, Jeong-rok    


Equipping herself for a trip to hospital

Mother 

Drops a word    


As I have pain in the waist

I see everything in the world as a chair

Flowers and fruits are all 

Sitting on chairs    


On weekend

Go round to your daddy’s tomb

You, eldest son, 

Were a good chair to father, weren’t you?    


Later, after getting acupunctured

I should spread straws on the melon patch

And put a rest for pumpkins

As they are our family, I will give them chairs    


Don’t fight with each other

Nothing special in marriage, child bearing and rearing

Just lay some chairs

Under a good shadow and at a scenic place  


      

외로운 이를 위한 의자

당신에게는 편안한 의자가 있으십니까? 이 세상 모든 편안한 것들은 모두 당신의 의자입니다. 언제나 내 편이셨던 어머니의 품,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던 고향 마을, 손바닥만 한 학교 운동장을 함께 뛰놀던 동무들,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나무 그늘 아래서 읽던 무명 시인의 시집, 저녁놀 지던 산등성이 아래로 뽀얀 연기 날리며 달리던 기차, 한 여름 도시의 회색 빌딩 사이로 그늘진 서늘함, 사랑하는 그 사람의 손에서 전해지는 따뜻함,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헌 책방의 책 냄새, 어머니가 끓이시던 된장찌개 냄새, 그리고 언젠가 가본 것 같은 꿈속의 수많은 장소들. 그 모든 것들은 언제나 추억 속에서 내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것들이었죠.     


시 속의 어머니는 허리가 아프신 모양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의자로 보이신답니다. 얼마나 놀라운 지혜입니까? 세상 모든 것을 의자로 생각한다면 얼마나 편안한 날들이 될까요. 걷다가 지치면 앉을 의자, 슬프면 앉아 눈물 흘릴 의자, 힘들고 외로운 내게 휴식을 주는 의자들로 가득 찬 세상은 어머니가 꿈꾸시고, 만들었던 또 하나의 위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주말에는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라 말하십니다. 큰 아들이 너무도 듬직하셨던 모양입니다. 여자의 일생이 그렇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 커다란 나무 그늘 같았던 그들 가운데 아들만 남았지만 어머니에게 아들은 그들 모두였던 것입니다. 혹시 딸들은 서운하실까 봐 하는 말인데, 여러분들은 그들이 만들어놓은 의자에 앉을 자격이 있으신 분들이죠. 뜰에서 키우던 참외와 호박에게도 의자를 내어주실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대지와 같다고 했죠. 이제 어머니는 혼인해 아이 낳고 사는 자식들에게 말합니다. 편안한 그늘을 만들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의자 같은 사람이 되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의자가 되는 삶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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