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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12. 2020

그 날이 오면

심훈, 아픈 역사의 굴레  

그 날이 오면

           심훈(1901~1936)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두 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던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     


If the day comes

          by Shim, Hoon     


If the day comes, If the day comes

If the day only comes when Mt. Samgak rises and happily dances

and the Han River stirs and popples

Before my life ends,

Like a crow that flies in the night sky,

I’ll strike the large brass bell in Jongro with my head.

Even if my skull is broken to pieces,

I’ll leave no regret behind in happy death.      


When the day comes, Oh, when the day comes,

I will cry, run and roll over on the wide path before the old palace

With my heart still leaping up with great joy.

I will gladly tear off my skin with a sword

And make a drum and fling it around my shoulder.

Then I will take the lead in your march.

If I can hear that rotund sound at least once,

I will gladly die with my eyes closed.

(Translated by Choi)     


소설가이자 시인 그리고 독립 운동가였던 심훈의 격동적인 시 ‘그 날이 오면’은 우리의 핏줄 속에 흐르는 애국의 혼을 뒤흔듭니다. 지난 세기 초엽, 대한제국은 그렇게 힘없이 무너지고 한민족은 일본인들의 무력에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오래 전의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할아버지 시대에 겪은 일이었습니다. 해방 후 이 나라는 이념이라는 굴레 속에 다시 국토의 분단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더욱이 남북으로 갈린 이 민족은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동족상잔의 역사를 살아야했던 것입니다. 성경 속의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이후 어떤 민족이 수 천 년의 세월을 함께 부비며 살아왔던 동족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가요. 참으로 비극적이고 참담한 세월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시인들의 시는 사랑을 얘기하고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해도 흔히 잃어버린 조국을 연상시킵니다. 하물며 이 시는 아주 직접적인 저항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죠. 그 날이 오면 삼각산도 한강도 모두 떨쳐 일어나고 쇠 종에 부딪혀 머리가 깨지고 살갗이 벗겨져도 기쁨에 겨워 춤을 추겠지요. 우린 슬픈 역사를 지닌 민족이고 아직도 그 질긴 역사의 짐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79년 음유시인이자 가수였던 김민기가 작사 작곡한 노래 ‘상록수’는 독재에 대한 저항의 노래이지만 위의 시와 마찬가지로 이 나라, 이 민족의 아픔에 더해 새로운 희망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Look at the greenest pine trees in that field.

No one cares for them

But, defying wind and rain, and snowstorm,

They are still shining green all over the world.     


Sweating and awakened,

I will be the pine tree in the wild field

Wishing that those past days, sad and heartbroken

Will never come again.     


Little as we have,

Shedding tears hand in hand

We will break through and finally win

However long and winding our path will be.

(Translated by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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