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앨범이 꽉 찼어요

이제 나도 ‘라테’를 찾습니다.

by 최용훈

오늘밤 또 다시 컴퓨터를 켜고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입니다. 화면에 등장한 흰 여백에 무언가를 채워보고 싶은데 별 생각이 떠오르지를 않습니다. 그러다 스물아홉의 초겨울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날 아침 저는 응암동 집 앞에서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고 있었죠. 그곳에서 전철을 타고 성균관대학교 수원 캠퍼스로 향했습니다. 초행길이라 조금은 긴장한 채로 전철에 오르다가 나는 온통 흙 범벅이 되어있는 제 코트 자락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택시를 타다가 그만 차문에 코트가 걸려 삐져나온 것을 깨닫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눈 내려 진창이 된 도로를 내내 쓸고 온 것이었죠. 참 당황스러웠어요. 그날은 그 대학에서 열리는 방학 중 영어특강의 첫날이었거든요. 아마 처음 학생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조금 긴장했고, 그날 할 강의의 내용을 되새기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시간 계산도 잘못되었는지 전철에서 내려 강의실까지 뛰다시피 도착했을 때는 막 강의가 시작되어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우선 강의실을 찾아 들어가서는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했죠. 강의실에는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제 강의가 유명해서가 아니라 당시에는 대학에서 열리던 영어특강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곤 했어요. 화장실에 들어가 코트 자락에 묻은 흙을 대충 털고 다시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전 유난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첫 만남이 무척 어색하게 이루어졌으니까요. 학생들은 강사가 너무 젊은 것에 의아해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때의 저는 지금과는 달리 많이 말라있었고, 머리는 장발이었어요. 그렇게 첫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특강은 80분 수업에 영어 독해와 어휘 강좌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했어요. 출판사가 주최한 강좌여서 교재 두 권을 팔려는 상업적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사실 짧은 시간에 독해와 어휘 과목을 둘 다 가르치는 것은 그다지 타당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강의에 대한 욕심으로 저는 너무 많은 양의 내용을 준비하고 있었고요. 정신없이 강의를 마치고 학생들을 돌아보았을 때 그들의 얼굴에서는 별다른 표정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정규 강의도 아니고 학원 수업처럼 소수의 모임도 아니었기 때문에 영어특강의 분위기는 언제나 다소는 차갑고, 무심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교양영어를 가르쳐보기는 했지만 특강은 처음이라 조금은 흥분했고, 그저 머리에 기억된 이야기를 기계처럼 풀어내기 바빴던 수업이었어요.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첫 수업을 마치고 다시 전철을 타고 돌아오며 생각했습니다. “내일부터는 조금 차분해지자! 그래도 학생들이 집중해서 수업을 들은 것 같으니까. 아주 실패한 수업은 아니었어.”


그렇게 7주간의 수업이 계속되었습니다. 독해 교재는 ‘영어 순해,’ 어휘 교재는 ‘Vocabulary 22000’이었어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고려원’이라는 출판사의 교재였습니다. 그 당시 특강을 담당했던 출판사의 임부장이라는 분은 그 후 제법 오랜 동안 인연이 이어졌었습니다. 나중에 지금의 ‘넥서스’라는 출판사를 세우고 유명 출판사로 키운 분이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자리를 잡고 난 뒤에는 아주 이따금씩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지금은 소식조차 모르고 지냅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아쉬운 만남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각기 자신의 일에 바쁘다보니 소원해지고 마는 그런 관계들 말입니다. 게다가 저는 마음과는 달리 사람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친구도 많지 않은 처지지요. 사실 같은 공간, 같은 일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서로 친해지기 마련입니다. 할 얘기도, 상의할 일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그 공간을 떠난 후 서로 간에 공통의 화제가 끊어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리가 멀어지고 맙니다. 참 쓸쓸한 일이지요.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 그 시간이 그만큼 소중한 것입니다.


그 겨울의 특강이 끝나던 날,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시작할 때보다 절반 이상 줄어있었습니다. 변명 같지만 의무적이지 않은 특강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요.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교재를 가방에 넣고 있는데 두어 명의 학생들이 교탁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간 수고했다며 몇몇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함께 식사하고 가시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몇 년간 특강에 참여하였지만 이러한 경험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참 특이한 학생들이었죠. 사실 저는 그런 어색한 모임은 별로 좋아하질 않아요. 한 달 반 정도의 기간 동안 같이 하나의 교재를 놓고 공부한 것이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다지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아무튼 우리는 학교 근처의 음식점에 들렸고 저는 김치찌개를 주문했던 것 같습니다. 놀라운 일은 음식 값을 학생들이 지불한 것이었어요. 난 당연히 제가 계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열 명 남짓한 학생들이었는데 그들도 사실 그 특강에서 처음 만난 사이들이었어요. 돌이켜 보니 그게 벌써 36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까요?


언젠가 보니 제가 벌써 ‘라테’를 얘기하는 나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무슨 기억만 되살리면 30년, 40년 전의 일이니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옛날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요.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제 오랜 교직생활 중에 미소 짓게 하는 몇 안 되는 기억이기도 합니다. 시간 강사로 시작한 나의 교직생활은 80년대와 90년대의 20세기를 거쳐 2000년대의 또 다른 20년을 끝으로 마감합니다. 기억 1: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일어나 수업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어요. 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죠. 그 친구는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밖에서 가열찬 투쟁을 하고 있는데 우리만 이곳에서 수업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기억 2: “교수님, 저 기억하십니까?” 길거리에서 머리가 벗겨진 중년의 신사가 날 보며 묻습니다. “글쎄, 누구신지...?” “저 교수님 제잡니다. 수업 중에 질문하신 것에 제가 대답을 잘해서 A+를 주셨거든요. 그게 제게는 큰 힘이 됐었어요.” 기억 3: 중국 상해의 어떤 호텔 프론트. 한 젊은이가 제게 뛰어와 중국식 억양으로 이렇게 묻습니다. “교수님,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90년대 중반 하얼빈 시에서 모집했던 중국인 유학생 중 하나였죠. 한국에서 관광경영을 전공했는데 중국으로 돌아와 호텔리어가 되어 있네요. 무수히 많은 기억들이 내 마음 속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생생하게, 어떤 것은 마치 꿈속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내 기억의 앨범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그 시간이 그립습니다. 그 길었던 여정에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이 왠지 이제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 사장님, 건강하십니까? 세월이 많이 흘렀죠? 언제 소주 한 잔 같이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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