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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an 14. 2021

향기 없는 향기 (2)

내면의 향기

향기가 만드는 아름다움     


유미주의자들에게 아름다움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아름다움이 어떤 기능을 하는가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바위에 부딪히는 바다의 포말, 탁 트인 수평선 위로 떠가는 흰 구름, 날씨에 따라 파랑, 초록, 회색으로 변하는 바다, 붉은빛으로 가득한 저녁노을, 감미롭게 주변을 흐르는 음악, 아스라한 추억을 떠올리는 사랑의 시, 그 모든 것이 마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 아름다움 속에서 감동을 느끼는가? 유미주의자들은 마음을 상관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아름다움이 주는 감정들보다 아름다움 그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움에 관한 한 유미주의자들이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 아름다움만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겉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전혀 다른 면에서 당신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얼굴이나 몸매가 아니라 당신의 무심한 태도, 우연히 지은 미소, 얼핏 보였던 하얀 다리, 그리고 당신이 입고 있는 하늘하늘한 원피스, 모든 것들이 아름다움을 만든다. 땀에 젖은 머리칼, 무언가에 몰두한 열정적인 눈빛. 아름다움은 외모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은 자신도 모르는 표정, 태도, 말투, 그리고 보지 못하는 자신의 다른 모습에서 나오기도 한다.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많은 부분은 실제로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닐 수 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은 자신이 아름다운지 모르는 사람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자기도 모르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움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것이 자신만이 지니는 향기이기 때문이다. 후각만이 아니라 사람의 모든 감각으로 느끼게 되는 향기 없는 향기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찾아내는 아름다움과 향기를 자신은 의식하지 못한다. 당신은 향기로운 사람이다. 스스로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1993년 상연된 미국 영화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에는 퇴역장교 슬레이드가 등장한다. 실명하여 앞을 보지 못하지만 그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향기로 여인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낭만적인 능력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멋지게 탱고를 추고 감각만으로 스포츠카를 미친 듯 몰아 대던 그에게는 짙은 고독감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암흑 속에서 방황하던 그였지만, 군인으로서 다져진 당당함과 용기, 정의에 대한 확고함 그리고 따뜻하고 현명한 삶에 대한 태도를 회복하고 마침내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난다. 제목과는 달리 영화는 슬레이드 중령의 인간적인 향기, 남자의 향기를 그려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향기를 찾아내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새로운 내면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낸다.    


내면의 향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향기가 한 인간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여 움직이는 힘은 내면의 향기이다. 후각으로 느끼는 향기가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남을 흔드는 한 사람의 향기는 설명할 수 없는 그만의 내면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얼굴에 있지 않다. 그것은 마음속의 빛이다.” (Beauty is not in the face; beauty is a light in the heart.) 레바논 태생 미국 시인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의 말이다. 마음속의 빛을 밝혀 내면의 향기를 품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할 삶의 목표일 것이다. 내면의 향기는 감각에 호소하는 달콤함보다는 담백하고 소박한 영혼의 향기이어야 한다. 안도현 시인은

‘봄날, 사랑의 기도’에서 이렇게 갈구한다.    


장미의 화려한 빛깔 대신에 

제비꽃의 소담한 빛깔에 취하게 하소서

백합의 강렬한 향기 대신에 

진달래의 향기 없는 향기에 취하게 하소서    


당신은 어떤 향기를 지니고 있는가? 꽃의 향기, 바람의 향기, 바다의 향기? 사람은 사람의 향기를 지녀야 한다. 감정의 향기, 지혜의 향기, 용기와 정직의 향기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감정의 후각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을, 당신에게 들러붙어서 모든 것을 뚫고 들어가 누군가를 휘감을 그 마음의 향기를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의 시처럼 활짝 핀 난(蘭)의 향기처럼 맑고 순수한 향기, 서늘한 미풍, 상큼한 비의 향기, 나비의 날갯짓처럼 미묘한 향기를 풍겨야 한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은 영원의 향기를 가져야 한다. 눈을 감아야 보이는 향기 없는 향기여야 한다. 그리고 당신은 이미 그러한 향기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 그 향기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얻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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