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Jan 18. 2021

그대 마음을 만져보고 싶을 때

김주수,  그대가 준 끝없는 마음 같아서

그대 마음을 만져보고 싶을 때

                        김 주 수    

1

하늘빛을 만져보고 싶을 땐

연못가에 가서

물 속에 앉은 하늘을 만져봅니다.    


내 안에 있는 그대 같아서,

그대가 내게 준

끝없는 마음 같아서.    

2

햇살을 만져보고 싶을 땐

강물가에 가서

물 속에 드리운 햇살을 만져봅니다.    


내 안을 흐르는 그대 같아서,

그대가 내게 준

꺼지지 않는 생의 불빛 같아서.    

3.

나뭇잎의 그늘을 만져보고 싶을 땐

연못 아래로

드리운 나무 그늘을 만져봅니다.    


내 안에 있는 그대 영혼 같아서,

내 영혼의 가지에 드리운

길이 마르지 않을 값없는 그늘 같아서.     


When I Want to Touch Your Mind

                     by Kim, Ju-soo     

1.

When I want to touch the color of the sky,

Standing by the pond

I touch the sky settling on the water.    


It seems to be you in me,

It seems to be your endless mind

You gave to me.     

2.

When I want to touch the sunlight,

Standing by the river

I touch the sun dwelling in the water.    


It seems to be you flowing in me.

It seems to be the eternal light of life

You gave to me.     

3.

When I want to touch the shadow of the leaves,

I touch the shadow cast

Under the pond.     


It seems to be your soul in me.

It seems to be the priceless shadow

Never to be dried on the branches of my soul.      


김주수 시인의 시는 한시(漢詩)를 풀어 놓은 것 같은 정서가 있습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연못가, 강가에 앉아 떠나온 여인을 생각하며 물결을 간지럽히는 한 처사(處士)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옥편에서 한자를 찾아보고, 번역된 내용에 비추어 몇 편의 한시를 읽어본 것이 고작인 사람이 느낌만으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시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저는 좋은 의미에서 이 시를 통해 동양적 허무와 관조를 느끼게 됩니다. 서양시의 측면에서는 이미지즘의 간결성과 명징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제도 그렇고 주제를 풀어내는 표현도 간결한 반복 속에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물 위에 비친 하늘, 햇살, 그리고 나뭇잎의 그림자에서 자신만을 위해 건넸던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삶의 빛, 그리고 안식 같은 그늘을 손끝으로 느끼는 것이죠. 하지만 시 속의 그는 그리움 속에서도 경솔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엘리엇이 얘기한 ‘몰개성’의 미덕이지만, 담담한 가운데 표현된 사랑하는 이에 대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이 시가 깨운 감정의 일단으로 제가 좋아하는 채근담의 한 구절을 이곳에 담아봅니다. 대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처럼, 호수 위를 날아간 기러기처럼 소리도, 그림자도 남기지 않은 그 텅 빈 가슴 속에도 무언가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風來疎竹 風過而 竹不留聲 (풍래소죽 풍과이 죽불유성)

雁度寒潭 雁去而 潭不留影 (안도한담 안거이 담불유영)

故 君子 (고 군자)

事來而 心始現 (사래이 심시현)

事去而 心隨空 (사거이 심수공)    


바람이 성긴 대숲에 오매,

바람이 지나가면

대숲에는 소리가 남지 않고,     


기러기가 차가운 못을 건너매

기러기가 가고 나면

못에는 그림자가 남지 않는다.     


고로 군자는     

일이 생겨야

마음이 비로소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느니라.     


When the wind comes to pass

Through the thick bamboos,

Not a sound remains in the bamboo forest.     


When a goose crosses the pond

And flies away,

Not a shadow is left on the water.    


Therefore, a gentleman    

Opens his mind

When something happens,

Empties his mind

When something goes by.     

매거진의 이전글 굿바이,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