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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an 21. 2021

천천히 서두르세요

느리게, 느리게

쌍둥이 형제가 있었습니다. 너무 똑같이 닮아서 어떤 때는 어머니조차 두 아들을 구분하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두 아들은 외모를 빼고는 모든 면이 달랐습니다.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서로 한 군데 같은 곳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자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똑같이 재산을 나누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쌍둥이 동생이 아버지의 말에 반대를 하고 나섰습니다. 아무리 형제지만 재산의 분배는 능력이나 재능에 따라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모든 면에서 적극적이던 동생의 주장에 내성적이던 형은 아무 말 없이 동의해주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던 아버지는 한참을 생각한 후 내기 하나를 제안했어요. 같은 시간에 더 먼 길을 다녀오는 사람에게 더 큰 재산을 주겠다고 말이죠. 단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태양이 빛나던 다음 날 아침 형제는 동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형은 경주라는 것을 잊은 듯 평상시의 속도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은 예상대로 마치 단거리 경주를 하듯 내달았습니다. 뛰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정오 무렵 형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섰습니다. 올 때처럼 돌아가는 길에 들 힘을 안배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동생은 정오가 지난 후에도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마침내 꽤 먼 길까지 달려온 동생은 비로소 돌아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내내 달려오느라 힘을 너무 쏟은 나머지 돌아가는 길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해가 지기 전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영어에 ‘Make haste slowly.’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천천히 서두르라.’는 뜻인데 내용 상 모순이 되는 표현이죠. 서두르는 것은 급히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는데 천천히 서두른다는 것은 ‘차가운 불’과 같은 형용의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말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너무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아요. 원하는 것을 빨리 얻기 위해, 가고 싶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우리는 쌍둥이 동생처럼 달리고 또 달립니다. 그러다 돌아올 시점을 놓치기 일쑤지요.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마라톤 같은 것이에요. 때론 모퉁이도 돌고 고갯길도 올라야 하는 긴 경주입니다. 인생의 길에는 서두른다고 먼저 도착할 곳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정연복 시인의 ‘느리게’라는 시는 일상에 쫓기고 마음이 급해질 때마다 나를 붙들어 어머니의 손처럼 쓰다듬으며 말합니다. ‘너무 애쓰지 말어.’     


먼 길도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황소처럼    


유유히 바다로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넓은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저 구름처럼    


꾸물꾸물 제 갈 길을 가는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담벼락을 오르는

담쟁이처럼    


일 년에 단 하나의 나이테를 만드는

나무처럼    


초침과 분침에게 시치미 떼고

제 속도로 살아가는 시침(時針)처럼    


느리게 

느리게    


Slowly 

     by Chung, Yeon-bok     


Like a cow

That walks a long way step by step    


Like a river

That quietly winds its way into the sea.    


Like a cloud 

That freely floats along spacious skies,    


Like a snail 

That is, endlessly crawling, on its way,    


Like an ivy 

That idly climbs on the wall,    


Like a tree

That makes a ring only once a year,    


Like the hour hand that goes at its own speed

Feigning indifference to its minute and second hands,    


Slowly

Slow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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