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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an 20. 2021

카멀라, 부통령이 된 여검사

제가 최초의 흑인 여성 부통령 일지는 몰라도, 마지막은 아닐 겁니다

승리 연설을 하는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

민주당의 조 바이든(Joe Biden)이 1월 21일(한국 시간) 미국의 4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와 함께 러닝메이트였던 카멀라 해리스(Camala Harris)는 흑인 아시아계 여성 최초로 미국의 부통령이 되었다. 지난해 11월 7일 저녁, 바이든의 당선이 확정되었을 때 그녀는 흰색 슈트 차림으로 승리 연설을 위해 연단에 올랐다. ‘흰색’은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여성의 정치참여를 상징하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 여성 참정권 운동이 일어났을 때의 상징색이 흰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부통령으로 확정된 2020년은 미국의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그녀의 부통령 당선은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카멀라의 SNS에 포스팅된 영상에서 그녀는 전화로 바이든과 당선의 소식을 함께 나누었다. “우리가 해냈어요. 우리 가요. 조, 당신은 이제 미합중국의 차기 대통령이에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웃음 띤 얼굴로 환호하던 그녀는 운동복 차림이었다. 그녀의 말은 바이든의 당선을 축하한 것이었지만, 사실상 그 순간을 역사를 만든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이민자의 딸로서 그녀는 아시아계 흑인 최초로 여성 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카멀라 해리스는 1964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도널드는 아프리카계 자메이카 출신으로 이국으로 이민하였으며 스탠퍼드 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이다. 어머니는 인도의 타밀족 출신으로 역시 미국으로 이민한 유방암 전문의였다. 카멀라는 아프리카계 흑인과 인도계 아시아인의 혼혈이었다는 점에서 다인종 국가 미국의 유색 소수민족을 대변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청교도의 나라 미국에서 아일랜드계 가톨릭이었던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과 흑인 최초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Burack Obama)가 등장했던 이래 그녀가 미국의 정치사에 새로운 기록을 추가했던 것이다. 카멀라는 승리 연설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언급했다.     


“어머니가 19세의 나이로 인도에서 이곳으로 왔을 때 그녀는 아마도 이 순간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와 같은 순간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가능할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믿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그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 세대의 여성들, 흑인 여성들, 그리고 아시아계, 백인. 라틴계,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들 모두를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 나라의 역사를 통해 오늘 밤 이 순간을 위해 길을 닦아왔던 분들이십니다.”    


일곱 살 때 부모가 이혼한 후, 카멀라는 몇년 뒤 어머니와 함께 캐나다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돌아와 워싱턴 D.C. 하워드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공부했고, 캘리포니아 대학교 헤이스팅스 로스쿨을 졸업한 후 캘리포니아 주 검사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다. 2003년, 39세의 카멀라는 샌프란시스코 검찰의 지방검사장 직에 도전하여 당선되었고, 8년 간 재직한 후에는 캘리포니아 검찰총장 직에 출마하며 당선되었다. 법조계에서 놀라우리만치 급속한 성공을 거둔 뒤, 카멀라는 2017년 1월, 53세의 나이로 캘리포니아 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불과 2년 뒤, 그녀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직에 도전하여 조 바이든과 경합하지만 탈락한다. 이후 그녀는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였고 그에 의해 부통령 후보에 지명되었다.      


그녀의 법조인으로서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정치 입문 후 불과 2년 만에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것은 놀라운 파격이었다. 이후 그녀의 경력에 대해 숱한 루머들이 대두되었다. 특히 29세 때 60대의 유부남이자 캘리포니아 정계의 거물이었던 윌리 브라운 하원의원과의 관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것이 그녀의 파격적인 정치적 성공과 관련이 있는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법조계에서의 경력에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은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바이든과 대립하던 그녀의 대담한 모험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그녀의 정치적 미래는 상당한 타격을 입으리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바이든은 이 검사 출신의 여성 상원의원을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지명함으로써 그녀를 다시 스포트라이트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카멀라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인도적 배경 속에서 성장했고, 어머니를 따라 여러 차례 인도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카멀라와 여동생 마야를 오클랜드의 흑인 문화 속에서 양육하였다. 그녀의 자서전 ‘우리가 지니고 있는 진실’(The Truth We Hold)에서 카멀라는 이렇게 회상한다.  "제 어머니는 자신이 두 명의 흑인 딸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셨어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마야와 나를 흑인 소녀로 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를 자신감 있고, 자랑스러운 흑인 여성으로 성장시키리라 결심했던 것이죠. “          


그녀의 다문화적 배경은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 급속한 인구 분포의 변화를 겪는 여러 지역에서 그녀는 그들의 정치적 열망에 대한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이것은 바이든이 그녀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모교였던 하워드 대학은 전통적으로 흑인 중심의 대학이었고 그것은 그녀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017년 모교에서 행한 연설에서 카멀라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여러분들은 정의를 위한 투쟁에 동참해 왔습니다. 저항했죠. 퍼거슨의 거리에서 미 의사당에 이르기까지 여러분들은 제임스 볼드윈의 말을 따라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이끌어낼 미래의 때는 결코 없을 겁니다. 도전은 이 순간에 있는 겁니다. 시간은 언제나 지금이죠.”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18)을 총으로 사살한 백인 경찰 대런 윌슨(28)에 대한 대배심의 불기소 결정으로 촉발된 미국 미주리 주 퍼거슨 시의 소요 사태   


하지만 그녀는 백인 사회 내에서도 비교적 쉽게 융화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을 캐나다에서 보냈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어머니는 캐나다 맥길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카멀라와 동생 마야도 몬트리올에서 5년 간 학교를 다녔다. 카멀라는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신을 단지 ‘미국인’이라고 묘사한다. 정치적, 인종적 통합을 요구하고 있는 오늘의 미국 사회에 그녀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2019년 워싱턴 포스트와의 대담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요점은 이거예요. 나는 나라는 것. 난 그걸로 충분해요. 자신을 알아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괜찮아요.”        

2014년 카멀라는 백인 변호사 덕 엠호프와 결혼하였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그녀의 곁은 지켰던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였다. “덕과 내가 결혼했을 때, 남편의 두 아이 콜과 엘라 그리고 저는 한 가지 약속을 했죠. ‘새엄마’라는 호칭은 쓰지 않기로요. 그 대신 ‘마멀라’라 부르기로 했답니다.”       


카멀라는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부통령이 되었다. 그녀는 고령의 바이든 대통령 행정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평론가들이 흔히 얘기하듯 미국의 부통령이란 자리는 대통령이 유고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저 한 편에 앉아 시간을 때우고 대통령이 불러주길 기다리는 역할에 불과할 지 모른다. 그러나 바이든과 전화하며 환하게 웃던 그녀의 모습, 승리 연설에서 보여주었던 다정함과 여유로움을 기억하는 많은 지지자들에게 그녀는 부통령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 전 부통령 후보직을 수락한 캐멀라와  바이든의 대화에서 바이든은 오바마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직을 수락한후 나누었었던 대화를 소개한다.

"그가 내게 물었어요. '부통령 후보직을 수락하면서 원하시는게 있나요?'  내가 말했죠. '난 대통령이 무언가를 결정할 때 그 방에 맨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난 카멀라 당신이 그랬으면 좋겠어요. 당신은 내 생각과 다를 때도 진실을 말할 것을 믿으니까요. 당신의 판단은 언제나 옳을 테니까요."


카멀라는 미국이 가능성의 나라임을 증명해 보였다. 부모가 모두 미국인이 아니었던 이민자의 딸, 백인 중심의 사회에서 인도계 흑인으로 성장한 소수자, 그리고 아직도 유리천장의 장벽을 넘어야 하는 여성으로서 그녀는 또 다른 미국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승리를 자축하는 그 연설에서 그녀는 자랑스럽게 선언하고 있다.  


”제가 최초의 흑인 여성 부통령 일지는 몰라도, 마지막은 아닐 겁니다. 오늘 밤 이 순간을 바라보는 모든 어린 여자아이들이 이곳이 가능성이 가득한 나라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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