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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an 29. 2021

아버지와 딸

정연복

아빠와 딸  

         정연복    


얘야, 자꾸 부탁해서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내게 기대어 오는 그 무게로

오히려 아빠는 힘이 솟는 것을.    


아빠가 지상에서 살아온 지

어느새 쉰 다섯 해가 되어    


머리에 흰 서리 내리고

가끔 피곤이 스르르 몰려와    


이제 너를 번쩍 들어 올려

천장에 붙였다 뗐다 할 수는 없어도    


종잇장같이 얇은 잎새들이

비바람과 이슬의 무게 너끈히 감당하듯    


아빠도 아직은 건강하니

언제든 맘 놓고 기대어 오렴.    


나의 아름다운 무게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소중한 것아.     


Father and Daughter

         by Chung, Yeon-bok     


My daughter, tell me mot

Sorry for asking too much.     


Your leaning on me, your weight

Rather makes me strong.     


It’s already fifty five years

Since I lived on earth.    


My hair turns gray

And I feel tired sometimes,     


So I can no more lift you up

To the ceiling.     


But just as the leaves, thin like paper,

Easily stand rain and wind, and the weight of dews,     


So I still stay fit enough

For you to lean on me.     


My beautiful weight,

The prettiest and the most precious thing in the world.     


아버지와 딸은 눈짓으로 얘기합니다. 가벼운 터치로 서로를 느끼고, 한숨으로 서로를 애달파합니다. 곱게 키운 딸을 시집보낼 때 아비의 마음은 타들어 갑니다. 잘 살기만을 바라지만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슬픔과 안쓰러움과 안타까움이 마음에 가득합니다. 아이가 내게 기대올 때는 오히려 행복했습니다.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때는 가슴 깊이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아이의 고통과 슬픔을 지켜보기만 할 때에는 가슴이 미어집니다. 간혹 두 사람 사이에 애증의 관계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늙어 힘없고, 무능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장성한 딸은 그가 겪은 세월의 무게가 안타까워 눈물을 흘립니다. 어머니라는 이름과는 다른 슬픔과 외로움이 아버지라는 이름의 주변을 맴돕니다.     


최근의 보도를 보면서 아버지와 딸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학자, 오피니언 리더, 정부의 영향력 있는 고위공직자로서 존경받고 있었습니다. 딸은 그런 아버지가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요. 그녀는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버지와 딸은 누구도 부럽지 않은 멋진 가족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랑스런 아버지가 무너졌습니다. 존경과 신뢰는 많은 사람의 조롱과 질타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몰락의 무게가 딸에게도 가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그 두 사람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자신에게 기대는 무게만큼 행복해지는 아버지는 딸의 고통을 보면서 어떤 회한에 잠겨있을까요. 그의 마음을 다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다른 모든 고려를 접어두고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넓은 등에 업혀 잠들었던 그 아이가 눈물을 흘릴 때, 아버지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길 것입니다. 하지만 한 번 더 뒤돌아보기 바랍니다. 종이처럼 얇은 나뭇잎이 비바람을 견디듯 자식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온 이 땅의 많은 아버지들은 자신의 무능을 자책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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