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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an 30. 2021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류시화, 슬픔 너였구나

슬픔에게 안부를 묻는다

                    류시화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 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 때 이곳을 울려 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던 흰 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치며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타고 이 겨울 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Say Hello to Sorrow

               by Ryu, Shiva    


It was you!

Something that hid behind the tree

And surprised me like a fox 

Startled by the sound of a man.      

Sadness, it was you! 


I tried to pass through this path silently 

Before it grew dark

I hurriedly tried to depart from this winter forest.

Then I just woke you up. 


Surprised, my horse looks around.    

The little river between the woods muffles its cry,

Leaves gather together there at the bottom. 

Much has been changed here

But something remains still unchanged.     


Where are now those masters of echoes 

Once resounding here?

That dazzle of light

Which looks like a white bird’s wings hopping from tree to tree,

And the ages that soar up with a big applause,    

It was you! 


Something that followed me from the start

And that surprised me like a crow shaking the frosted branches.

It was you!     

I just tried to pass. 

Hurriedly riding a horse, I tried to bid farewell to this winter forest. 

But I was found by you. 

Sadness, it was you.     


슬픔은 언제나 느닷없이 찾아옵니다. 누구든 슬픔을 만나기 싫어 피해보려 하지만 슬픔은 마치 숨어있던 무엇 인가처럼 불쑥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우리의 가슴을 치고, 우리로 하여금 실의에 빠져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죠. 이별도, 상실도, 절망이나 고뇌도 미리 알리고 찾아오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준비 없이 예기치 못했던 슬픔에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슬픔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죠. 그것은 처음부터 우리의 뒤를 쫓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삶의 그림자 속에는 늘 슬픔의 그림자가 겹치기 마련이니까요. 사랑이 영원할까요? 오늘 누리는 기쁨이 내일도 계속될까요? 성공의 환희는 언젠가의 실패로 빛을 잃고 말지요. 어깨를 기대고 살던 사랑하는 사람과도 언젠가는 헤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슬픔은 우리와 함께 삶의 거리를 거닐고 있습니다.      


하지만 슬픔은 시간의 날개처럼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영원히 슬픔에 겨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삶은 없습니다. 긴 슬픔의 사이사이에서도 우리는 기쁨의 미소를 발견합니다.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슬픔은 두 개의 정원 사이에 세워진 벽’ 같은 것이죠. 언젠가 그 벽이 허물어지면 꽃들이 피어나고, 나무가 열매를 맺고, 새들이 노래하는 아름답고 넓은 정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마음에 다가서는 아름다운 노래들은 모두 슬픔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여린 선율에 실린 그 이야기들이 지나간 슬픈 기억들을 소환하지만, 우리가 그 슬픔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그 또한 사라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 역시 나를 사랑했었다.” 그 사랑은 지금 어찌 되었는가? 과거의 행복과 기쁨도 지금의 슬픔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의 슬픔도 내일의 기쁨일 수 있음을 믿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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