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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02. 2021

사소함이 된 생각과 기다림

황동규, 즐거운 편지

즐거운 편지

           황동규     


Ⅰ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Ⅱ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A Joyful Letter

          by Hwang, Dong-kyu     


I.

That I think of you may be

Something trifle

Like the setting sun and the blowing wind

In the background of your sitting.

With that trifle thing

Transmitted for a long time

Someday I will call you

When you wander in endless agony.    


II.

Truly, why I love you truly is

I have changed my love

To the eternal, back-to-back waiting.

Well into the night snow began to pour.

But I believe my love will surely cease somewhere.

I just think how I will wait then.

In the meanwhile, I believe, snow will stop

Flowers will come out, leaves will fall, and snow will pour again.       


행(行)의 구분은 없지만 연(聯)은 둘로 나누어진 황동규 시인의 시입니다. 편지처럼 써 내려간 시를 저는 각 연을 8행으로 나누어 표현해 보았습니다. 그가 쓴 편지를 가능하다면 조금씩 나누어 음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오늘도 내일도 사랑했던 누군가를 생각합니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 무심히 앉았던 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일상이 되고 하염없는 사소함이 되어버린 그 생각이 언젠가 그대 아픔으로 무너질 때, 당신을 다시 부르리라 다짐합니다.       


그리고 그 간절했던 사랑이 고통스러운 기다림으로 변하여도 변치 않음을 얘기합니다. 밤이 되자 망각을 부르는 흰 눈이 쏟아집니다. 결국은 언젠가 그 사랑의 마음도 식어버릴지 모르겠습니다. 망각의 눈에 덮여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기다리겠죠. 어떤 모습일지는 몰라도 기다림조차 사소한 것이 되어 이어지게 될 겁니다. 그러는 동안 계절은 시간 따라 변하겠지만, 그 기다림의 겨울은 다시 돌아와 또 흰 눈을 퍼붓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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