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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02. 2021

눈물이 시 되어 읽는다

이생진,  가난한 시인

가난한 시인

         이생진(1929~  )  


가난한 시인이 펴낸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는다.

가난은 영광도 자존도 아니건만

흠모도 희망도 아니건만

가난을 훈장처럼 달아주고

참아가라고 달랜다.

저희는 가난에 총질하면서도

가난한 시인 보고는

가난해야 시를 쓰는 것처럼

슬픈 방법으로 위로한다.

아무 소리 않고 참는 입에선

시만 나온다.     


가난을 이야기할 사이 없이

시간이 아까와서 시만 읽는다.

가난한 시인이 쓴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을 때

서로 형제처럼 동정이 가서

눈물이 시 되어 읽는다.    


A Poor Poet

         by Lee, Saeng-jin     


A poor poet buys and reads

The collection of poems by another poor poet.

Poverty is neither glory nor dignity,

Nor admiration nor hope.

But poverty, like a decoration, is pinned

On a poet as an appeasement.

While they shoot away poverty,

They just soothe the poor poet

In the saddest way,

As if poems were written in poverty.

From the mouth of the poet who silently bears it out.

Only comes out a poem.        


Not wasteful of time, he only reads a poem

Before he talks about poverty.

When a poor poet buys and reads

The collection of poems by another poor one,

Like  brothers, sympathizing with each other,

The two read tears that become a poem.  

    

독일 화가 칼 스피츠베크(Carl Spiltzweg)의 '가난한 시인'

네덜란드 태생의 16세기 인문학자 에라스뮈스는 ‘우신예찬’(Praise of Folly)이라는 책에서 ‘어리석지 않다면 왜 가난한 시인이 되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예전에도 시인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이었던 모양입니다. 하긴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참 지난한 일이죠. 하물며 시작(詩作)이야 말해 뭐할까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인터넷 상에는 아름다운 시들이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시를 좋아하고 즐겨 읽습니다. 시를 통해 사람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우리의 참모습을 깨닫기도 합니다. 옛 기억이 떠올라 눈물짓고, 지혜로운 구절에 감동하고 용기를 얻습니다. 그런데 왜 시집은 팔리지 않는 걸까요? 왜 시인은 가난 속에서 절망하고 고통받고 있을까요? 여전히 시집보다는 이야기 가득한 산문집이 더 흥미로운 것인가요? 그래서 젊은 시인들은 출판사의 냉정한 거절 앞에 좌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라스뮈스가 말한 ‘어리석은 시인’ 이야기는 역설이었죠. 우리 모두 어리석지 않아 시인이 되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과 함께 하며 우리에게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고뇌와 해방의 온갖 감정을 뒤흔들어 놓은 그 무수한 시들은 어떻게 태어날 수 있을까요?      


고전적인 의미에서 시의 생명은 압축(condensation)과 음악성(musicality)라고 합니다. 사실 인간은 운문(韻文, verse)의 아름다움을 깨달아 시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음악적 리듬과 운율이야 말로 시의 본질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는 짧은 몇 줄의 표현으로 긴 이야기들을 대신합니다. 하나의 시어(詩語)가 가리키는 그 광대한 의미 속에 시인은 무한을 담을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시는 짧습니다. 시집은 얇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들어선 이야기는 무수한 한숨과 고뇌의 결과물임을 믿습니다. 서점의 구석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많은 시집들은 존중해야 할 시인의 영혼입니다. 오래전 아버지의 서가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꽂혀있던 이태리 시인의 번역된 시집 안에서 ‘가멸다’라는 낱말을 발견하고 가슴 벅찼던 기억이 여전히 새롭습니다. 코로나로 꼼짝 못 하는 요즘이지만 시내 서점에 한 번 나가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시집을 한 권 사야겠습니다. 가난한 시인의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시의 마지막 구절에

표현된 것처럼 그들의 눈물이 시가 되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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