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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01. 2021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린다

윤동주, 쉽게 써진 시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An Easily-written Poem

              by Yoon, Dong-ju     


The night rain is whispering at the window

This narrow room is on others’ land.    


Though I know a poet is born of sad fortune

I am trying to write a poem.      


With a tuition envelope in hand,

Sealed and sent with the sweet smell of sweat and love     


I am on my way to the lecture of an old professor

Carrying a frayed notebook.     


Come to think of my childhood, 

I have lost all my friends one by one.     


For what 

Do I nothing but sink deep alone?     


As life is said to be hard

It is quite a shame 

To write a poem so easily.     


This narrow room is on others’ land 

The night rain is whispering at the window.     


Driving out the darkness by lighting the flickering lamp,

The last of me is waiting for the morning to come like the times.    


I reached out one of my small hands to hold another.  

It was my first handshake like tears and consolations.    


비좁은 다다미방에서 윤동주는 내리는 밤비의 속삭임을 듣습니다. 그곳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남의 나라. 젊은 동주는 그 원수의 나라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그가 쓴 마지막 시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남겨진 몇 편의 시들은 일제에 의해 파기되었을 테니까요. 시를 쓰고 일 년 후 일경에 체포되어 청년 동주는 남의 땅 후쿠오카의 감옥소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마음에 시심은 가득하지만 왠지 그는 글 쓰는 행위에조차 죄스러움을 느낍니다. 고향에서 부쳐온 학비 봉투를 손에 들고 그는 노교수의 무엇을 듣고 배우려 했을까요?     


돌아보니 옛 시절의 동무들은 간 곳 모르고, 그는 홀로 깊은 고뇌와 좌절을 육첩방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겪어냅니다. 어둡고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감수성 짙은 한 젊은이의 창백한 표정이 눈에 어른거리는 듯합니다. 간신히 불을 밝혀 희미한 불빛 아래서 젊은 시인은 다가올 아침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자신과 악수를 청합니다. ‘이제 새 날엔 울지 말자. 가슴을 펴고 더 밝은 빛을 향해 걷자 ‘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시의 마음은 그런 것 같습니다. 깊은 심연에 침잠해 있다가도 좁은 틈바구니를 뚫고 다가서는 한 줄기 빛처럼 우리를 들뜨게 하니까요. 너무 쉽게 써서 오히려 미안한 그런 시인과 작가들에게 윤동주는 말합니다. 미안해 말라고. 그것이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눈물이 되고 위로가 될 것을 믿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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