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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13. 2021

내게 너무 소중했던 순간

뉴욕의 택시 운전사

뉴욕에서 일하는 한 택시 기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날 교대 전 마지막 승객을 태우기 위해 나는 회사에서 알려준 주소지에 도착했습니다. 몇 차례 경적을 울려도 대답이 없기에 그냥 차를 돌려 돌아갈까 생각했죠. 하지만 혹시나  하고 차를 주차시킨 후 그 집 문 앞으로 다가가 벨을 눌렀습니다. '잠깐만요.' 안에서 한 노인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를 들었죠. 한참 뒤 문이 열리고 90살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그곳에 서계셨습니다.


그녀는 긴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차양에 베일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죠. 마치 40년대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모습이었습니다. 그녀 옆에는 작은 나일론 가방이 하나 놓여있었습니다. 얼핏 집안을 들여다보니 마치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던 집 같았습니다. 가구들에는 모두 천이 덮여있었고 벽에 시계도 걸려있지 않았었죠. 부엌에는 주방도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퉁이에 있는 종이상자에는 낡은 사진과 유리 용품들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내  가방 옮겨 줄래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가방을 차로 옮기고, 돌아와서 그녀를  부축했습니다. 그녀는 내 팔에 의지해 아주 천천히 차까지 걸어갔죠. 걸어가는 내내 그녀는 내게 수도  없이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제게도 아주머니 같은 어머님이 계시거든요."

"너무 고맙구려. 좋은 분이시네요"


차에 탄 뒤 그녀는 내게 목적지 주소를 내밀었습니다. 그리고는 부탁조로 말했죠.


"시내로 해서 가줄 수 있겠어요?"

"그러면 돌아가는 건데요."

"난 괜찮아요. 서두를 일 없으니. 호스피스 병동에 가는 길이에요. 이제 남은 가족도 없고 의사 말로는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구먼."


나는 백미러로 힐끗 그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얼른 메타기를 꺼버렸죠.


"어느 길로 가시고 싶으세요?"


이후 여러 시간 동안 우린 시내를 빙빙 돌아다녔죠.  그녀는 자신이 한 때 엘리베이터 안내원으로 일하던 건물, 그리고 결혼 후 남편 분과 오랜 세월 살았던 동네 주변을 지나며 흥분한 듯 옛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구 창고 앞에 차를 세우곤 그곳이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다니던 무도장이라고 알려주었어요. 가끔 거리의 빌딩 앞, 모퉁이 길에서는 속도를 줄이게 하고 어두운 그곳을 아무 말 없이 응시하곤 했죠.

 저물 무렵 그녀가 갑자기 말했습니다.

" 피곤하네요. 이제 그만 가요."

우리는 말없이 차를 몰아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나지막한 건물 앞에 두  사람이 나와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녀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어요. 호스피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약속보다 늦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죠.

내가 트렁크를 열고 그녀의 작은 가방을 꺼냈습니다. 그녀는 벌써 휠체어에 타고 있었죠.


"얼마를 드려야 하나"  그녀가 지갑을 든 채 물었습니다.

"괜찮아요.  요금은 안 주셔도 돼요."

"그래서 쓰나. 생활을 해야 하는데."

"다른 손님을 태우면 돼요."


순간 나도 모르게 허리를 굽혀 그녀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녀 역시 나를 힘껏 안아줬어요.

"늙은이에게 잘해줘 고마웠수."

그녀의 손을 꼭 쥔 후  나는 돌아서서 지는 해를 마주하고 차로 걸어갔습니다. 내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은 한 인생을 마감하는 소리였습니다. 그날 나는 다른 손님을 태우지 못했습니다. 그저 생각에 빠져 이곳저곳 돌아다녔죠. 그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만일  거친 운전사를 만났으면? 내가 시내 돌아보기를 거절했다면? 경적을 한 차례 울리고 그냥 돌아갔다면?' 갑자기 가슴속에  치밀어 오르는 까닭 모를 슬픔에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날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우린 언젠가 삶의 중요한 순간을 맞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알지 못하는 순간 다가와 남들이 보기에 사소한 것 같은 일로 우리를 아름답게 감싸는 것 같습니다. 내게 그날은 너무도 귀하고 소중한 날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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