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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15. 2021

'호랑이 길들이기' 그리고 관계

아낙과 어린 왕자 이야기

한국의 우화 가운데 ‘호랑이의 수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호랑이의 수염을 얻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나운 호랑이를 길들이고 그의 수염을 잘라내는 한 여인의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연상할 수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합니다.     


오래 전 한 아낙이 살았습니다. 그녀는 매우 지혜로운 여인이었어요. 그녀의 남편 역시 다정하고 가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 나갔다 온 뒤 남편은 완전히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거칠고, 성마르고, 예측 불가한 성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녀는 크게 상심했습니다. 어떻게든 남편을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마을 근처 산중에 살고 있는 한 현인(賢人)을 찾아갔습니다.     


“날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남편을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그는 원래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습니다. 제발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현인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니 생각하는데 사흘은 걸리겠다. 그 후에 다시 오너라.”     


사흘 후 그녀가 현인을 찾아가자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남편을 바꾸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어. 살아있는 호랑이의 수염을 가져오너라. 그것이 유일한 처방이야.”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그것 외에 방법은 없어.”     


그녀는 난감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그녀는 쌀밥에 고기를 덮어 호랑이 굴 근처로 갔습니다. 두려움에 온몸이 떨리고 진땀이 흘렀습니다. 그녀는 음식 접시를 내려놓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 후로 매일처럼 그녀는 음식을 준비해 호랑이굴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몇 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굴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또다시 시간이 흘렀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그녀는 자신이 음식을 가지고 오는 것을 호랑이가 눈치채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가급적 소리를 내지 않고 접근을 했지만 이제 호랑이는 그녀의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만으로도 굴 밖으로 나와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의외로 호랑이가 그다지 사납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다시 몇 달이 지나갔습니다. 그녀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호랑이를 볼 수 있었고, 호랑이는 그녀에게 매우 호의적인 것이 분명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호랑이와 나란히 앉아 심지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치 집안에서 키우는 개처럼 온순해진 호랑이는 그녀의 손길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죠. 어느덧 여섯 달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결심을 하고 작은 칼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처럼 음식을 가지고 호랑이에게 갔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호랑이는 그녀 곁에 앉아 맛있게 그녀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한 손으로 호랑이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그녀는 준비한 칼을 꺼내 들었습니다.     


“호랑이야. 미안해. 수염 하나만 잘라갈게.”     


재빨리 호랑이 수염 하나를 잘라낸 그녀는 가만히 일어서 음식에 정신이 팔린 호랑이에게 작별을 고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호랑이 수염을 얻은 그녀는 그날 밤을 꼬박 새우고 날이 밝자마자 산속의 현인을 찾아가 호랑이 수염을 내밀었습니다. 그녀를 본 현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죠.     


“살아있는 호랑이의 수염이 틀림없구나.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구할 수 있었느냐?”     


아낙은 지난 여섯 달의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답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현인이 입을 열었습니다.     


“너는 이미 내 답을 알고 있지 않느냐. 네 남편이 호랑이보다 더 사나우냐? 그에게 호랑이에게 했던 것처럼 하기만 하면 되느니라.”        


이 우화를 읽으며 저는 문득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여우를 만난 어린 왕자가 함께 놀자고 하자 여우는 길들여지지 않아 그럴 수가 없다고 말하죠. 그리고 둘 사이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길들인다는 게 뭐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여우가 말했다.

"넌 아직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 역시 마찬가지 일거야. 난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    


우리는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죠. 길들이는 순간 호랑이도 사람도 더 이상 사납거나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서로 간에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길들이는 일은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란다."
 

여우는 어린 왕자가 만났던 장미와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길들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위해 들였던 시간임을 얘기합니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틀어져 가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필요한 만큼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여우의 이야기처럼 그 관계에 따르는 책임을 소홀히 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넌 그것을 잊어선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단다. “    


호랑이를 길들이기 위해 들였던 노력이라면 그 누구도 길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들어진 관계에 대해 우리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아낙의 노력은 분명 남편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길들여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리고 난 뒤에는 책임감이 필요하겠죠. 우리의 지혜로움은 가끔 평범한 진리를 놓치고 다른 곳을 헤매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신도 호랑이를 길들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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