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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18. 2021

물속의흙은 저절로 가라앉는다

부처 이야기, 웬델 베리의 시 '야생의 평화로움'

늘 일상의 불안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이따금씩 찾아오는 평화로운 마음은 얼마나 소중한지요.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행복이란 결국 ‘아타락시아’(ataraxia) 즉 ‘마음의 평화’(peace of mind)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루의 삶 가운데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시간은 얼마나 되세요? 그때 무엇을 하나요?     


오래전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난 얼마 뒤였어요. 어느 날 그는 제자들과 수행 중에 한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죠. 마을 근처의 호숫가를 지나던 부처님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곳에서 쉬어가자고 했습니다. 무척 더운 날이었어요. 부처님은 제자 한 사람에게 마실 물을 떠 오도록 시켰습니다. 제자는 즉시 호수로 달려갔죠. 그런데 그곳에는 몇 사람의 여인네들이 앉아 빨래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물은 지저분했고 흙탕물이었습니다. 게다가 쓰레기 같은 것이 둥둥 떠내려 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물을 스승님께 갖다 드릴 수는 없지.” 제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빈손으로 돌아가 부처님께 호수 물이 더러워 마실 수 없노라고 얘기했습니다.     


한참 뒤 부처님이 아까의 그 제자에게 다시 호수에 가서 마실 물을 떠 오라고 이르셨습니다. 제자는 다시 호숫가로 가보았습니다. 빨래하던 아낙들은 다 돌아갔고, 진흙들은 모두 물 밑으로 가라앉아 물은 깨끗하고 맑았습니다. 제자는 얼른 물 한 바가지를 떠서 부처님께 가지고 갔습니다.     


“물이 참 깨끗하고 시원하구나. 어찌했기에 이렇게 물이 맑아졌느냐?”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 흙이 모두 물아래 가라앉아 이리되었습니다.”     


제자를 바라보던 부처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죠.


“그래.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단다.  그냥 두면 되느니라. 마음이 불안할 때, 그저 가만히 두면 되지. 시간이 지나면 다 가라앉게 되니까. 마음을 잡으려 애쓸 필요는 없느니라. 그것은 저절로 일어나니까. 애쓸 필요가 없어.”     

가만히 돌아보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애쓰고 노력할수록 더욱더 마음이 무거워졌죠. 불안하고 더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그저 가만히 두고 보려 합니다. 스치는 따스한 봄바람에 자신을 맡기고 그냥 있으려 합니다. “이렇게 불안하고 힘든데 어떻게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있나요?” 당연하죠. 마음을 그냥 두기가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은 내버려 둬도 흐릅니다. 그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렵니다. 내 마음속의 흙이 시간에 따라 가라앉을 것임을 믿기만 할 겁니다. 그렇게 행복을 얻어 보려고요.    


스코틀랜드 출신 미국 시인 웬델 베리는 자연 속의 야생에서 평화를 발견합니다. 농부시인이어서 그럴까요? 그 역시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간의 흐름을 느낄 뿐이죠. 우리는 어디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         



야생의 평화로움

                웬델 베리    


세상에 대한 절망이 내 안에 커질 때

작은 소리에도 한 밤에 깨어나

나의 삶, 내 아이의 삶이 어찌 될지를 두려워할 때,

나는 아름다움을 뽐내며 수오리가 물 위에 쉬고 있는 곳,

커다란 왜가리가 먹이를 찾는 그곳으로 나아가 눕는다.     


나는 야생의 것들 속에서 평화를 찾는다. 

그것들은 지레 슬픔을 생각해 삶을 어렵게 하지 않는다.

고요한 물속에 몸을 담그면

머리 위로 낮을 잊게 하는 별들이

빛을 밝히며 기다리는 것을 느낀다.

잠시 동안 나는 세상의 은총 안에서 쉬고, 나는 자유롭다.                     


The Peace of Wild Things

                 by Wendell Berry    


When despair for the world grows in me

and I wake in the night at the least sound

in fear of what my life and my children’s lives may be,

I go and lie down where the wood drake

rests in his beauty on the water, and the great heron feeds.   


I come into the peace of wild things

who do not tax their lives with forethought

of grief. I come into the presence of still water.

And I feel above me the day-blind stars

waiting with their light. For a time

I rest in the grace of the world, and am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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