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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29. 2021

나는 나에게 미안합니다

이희중,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희중     


꽃들아, 미안하다

붉고 노란색이 사람의 눈을 위한 거라고

내 마음대로 고마워한 일    


나뭇잎들, 풀잎들아 미안하다

푸른빛이 사람들을 위안하려는 거라고

내 마음대로 놀라워한 일    


꿀벌들아, 미안하다

애써 모은 꿀들이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거라고

내 마음대로 기특해한 일    


뱀 바퀴 풀쐐기 모기 빈대들아 미안하다

단지 사람을 괴롭히려고 사는 못된 것들이라고

건방지게 미워한 일    


사람들아, 미안하다

먹이를 두고 잠시 서로 눈을 부라린 이유로

너희를 적이라고 생각한 일,

내게 한순간 꾸며 보인 고운 몸짓과 단 말에 묶여

너희를 함부로 사랑하고 존경한 일,    


다 미안하다

혼자 잘난 척, 사람이 아닌 척하며

거추장스럽다고 구박해 온 내 욕망에게도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남을 위해, 사람을 위해 살지 않고

바로 제 몸과 마음 때문에

또는 제 새끼들 때문에 살고 있음을 이제야 알아서

정말 미안하다    


I Am Sorry

                    by Lee, Hee-jung     


Flowers, I am sorry  

That I am grateful for your being red and yellow

Thinking at my pleasure those are only for people’s eyes.     


Trees, grasses, I am sorry

That I am impressed with your fresh green

Thinking at will that’s only for comforting people.      


Honey bees, I am sorry

That I praise you at my discretion

Thinking the honey you collect hard is only for people’s health.      


Snakes, cockroaches, caterpillars, mosquitos and bedbugs,

I am sorry that I hate you rudely

Thinking you are only here to torment people.     


Men, I am sorry

That I think of you as enemies just because

We look unkindly at each other for a moment

Over something to eat.

And that I thoughtlessly love and adore you

Binding myself to your once-disguised,

Fair gestures and sweet talks.     


I am sorry for all,

Even for my burdensome desire I have detested,

Falsely boasting of my mighty self and deceitful divinity.        


I am sorry that I know it now

For everything, small or large, to live

Not for others and for humans

But for its own body and soul

And for its kids.     


그의 시를 본 순간 나는 언젠가 꼭 하고 싶었던 내 얘기를 대신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현현(顯現, epiphany)! 갑작스레 떠오른 깨달음. 모더니즘 소설의 기법이라 했던가요? 아니네요. 이 짧고 친절한 설명으로도 저는 순간적인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무언가를 위한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오류였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들은 자신을 위해, 자신의 분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어요. 시를 읽고 한동안 깊이 생각했습니다. 난 누군가를 위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나 자신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인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끌어다가 미안하다고 했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그저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만 거북하게 여겨 미안하다고 했을 뿐이었죠. 하지만 시인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도 그가 얘기한 모든 것들의 일부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래요. 제가 시인 대신 감히 얘기합니다. ‘나는 나에게 미안하다. 그저 착해야 하고, 남을 배려해야 하고, 무언가 가치 있는 것에 대해 헌신해야 한다고 오만하게 생각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 내게 미안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이제와 깨닫게 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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