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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부신 소멸

문정희, '동백'

by 최용훈

동백

문정희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


Camellia

by Moon Jeong-hee


Nowhere to go on earth,

Mixing hot liquid with reddish poison,

Love, drinking it, leaps down from a sharp cliff.

The brightest flower is

Another name for the brightest extinction.


오늘 작은 동백나무 화분을 주문했습니다. 언젠가 여수의 한 호텔 정원에서 본 동백은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불빛 아래 찬연히 빛나던 그 붉은 꽃은 심연의 바닥에까지 내리 꽂히는 열정이었고 처연한 슬픔이었습니다. 동백은 꽃잎을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목을 꺾어 땅 위에 던지고 있었습니다. 바닥에 흥건히 흐르던 동백의 핏물이 눈앞에서 수천 가지 환상으로 피어오릅니다. 그것은 지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신비한 빛깔이었고, 독한 술보다 진한 마비의 절정이었습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끝없는 추락은 소멸의 의미를 그 슬픈 몸뚱이만큼 선명히 드러내 보이고 있었습니다. 온 천지에 빛나는 꽃들이 피어날 때, 그는 짧은 여운을 남기고 스러져 갑니다. 그렇게 눈부시게 소멸합니다.


3월의 끝자락에 주문한 동백나무에는 진홍빛 소멸의 꽃이 한 송이라도 달려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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