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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06. 2020

당신께 드리는 말 선물(23)

"장미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향기는 여전하죠."

사랑에 빠진 줄리엣은 타고난 운명을 거부하며 로미오의 사랑을 갈망한다.         

        “... 아, 로미오. 어떤 다른 이름이 되세요.

         이름 속에 뭐가 있다는 거죠? 

         장미꽃을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향기는 역시 마찬가지죠. “     (로미오와 줄리엣, 2막 2장)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열정에 사로잡힌 젊은이들의 사랑을 ‘병’으로 여겼다. 또한 로마의 문인 플루타르코스는 남녀의 사랑을 ‘광란’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현대 의학에서는 사랑의 열병을 겪고 있는 사람의 뇌파가 강박증 환자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랑의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혹독한 고통을 수반하는 모양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은 원수 집안의 아들 로미오를 사랑하게 되자 그 가문의 이름을 버리라고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사랑한다는 말만이라도 해달라고, 그러면 자신이 이름을 버리겠다고 말한다. 가문의 전통도, 부모 자식 간의 유대도 사랑을 만나면 무의미하게 되어버린다. 사랑은 그런 건가 보다.    

  

 줄리엣은 장미꽃 얘기를 한다. 이름과 상관없이 한결같은 그 향기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줄리엣의 그 말은 사랑을 넘어 우리에게 존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호명’(interpellation)이라고 했던가.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는 인간이 부모와 주위 사람들의 반복적인 이름 부르기를 통해서 자신의 이름을 획득하는 호명 과정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정체성과 생각도 집단적인 호명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우리는 사회적으로 부여된 자신의 정체성에 맞추어 살려고 애쓴다. 부모, 교사, 공직자 등등. 그런 이름으로 우리는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을 포기하고 산다. 그것이 자신의 의무이며 본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혹시 본래의 자신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내가 무엇이든지 인간으로서의 ‘나’의 향기는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나일뿐이다. 본래의 자신으로 사는 것도 우리의 당연한 권리가 아닐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서로 다른 집단으로 나뉘어 서로를 비난한다. 호명에 의한 자기규정과 다름없다. 하지만 양분된 집단 중의 어느 하나를 택하지 못한 사람들은 불안하다. 때론 회색분자, 기회주의자로 비난받을까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판단의 주체로서의 ‘나’를 상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것으로 여긴 과거의 단순한 생각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렇게 휘둘리지 않는 ‘나’로 살고 싶다. 내가 무엇으로 불리든 나만의 향기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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