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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pr 03. 2021

'자존심을 지켜주는 자선'

멋진 옷에 값비싼 장신구로 꾸민 한 여성이 길거리 노점에서 나이 든 할머니의 산나물을 삽니다.    


“이 나물 한 단에 얼마예요?”

“이천 원이에요. 두 단 사면 삼천오백 원에 드릴게요.”

“삼천 원에 주시면 살게요.”

“그렇게 해요. 오늘 개시인데...”     


그 여성이 멋진 차에 올라타 친구와 약속한 고급 레스토랑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비싼 스테이크를 반씩이나 남기고 점심을 마칩니다. 다가온 웨이터에게 카드와 함께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며 말합니다.     


“계산 부탁해요.”


아빠의 행동이 궁금한 초등학생 아이의 질문입니다.   

'우리 아빠는 늘 기도한 후에는 집 앞 노점상에 간답니다. 그리고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원래 값보다 비싸게 사지요. 왜 그러는 걸까요?’    


나중에 아빠는 아이에게 말합니다.

"남의 자존심을 해치지 않는 자선이란다."    


이 두 가지 이야기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첫 이야기에서는 두 가지 표현이 떠오릅니다: '부끄러운 인색함' 그리고 ‘허영심에 사로잡힌 관대함.’  이 두 표현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차이가 있기는 할까요? 뙤약볕에 허리를 굽혀 무딘 낫으로 겨우 파낸 할머니의 나물 앞에서 에누리했던 푼돈으로 제대로 먹지도 않은 고급 음식, 우아한 팁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해서 얻은 우아한 관대함은 그 여인에게는 무엇을 가져다주는 것일까요. 두 번째 이야기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던져준 교훈은 초등학생에게는 조금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적선하듯 던지는 자선보다는 조금 부풀려진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받는 사람의 마음에는 좀 더 편하겠지요. 그런 것을 배려라 부르기도 합니다...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요. 도움을 받기보다는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것이 기쁨입니다. 몇 푼의 돈으로 품위를 사고, 알량한 자비심을 고상한 삶에 대한 세금 같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그들의 관대한 행위로 자기만족은 얻을지 몰라도 다른 이에게 베푸는 진정한 행복감은 갖지 못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어렵고 고통받는 수많은 이웃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그들에게 스스로의 자존을 지킬 수 있는 도움이 필요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의 속된 인색함, 알량한 관대함, 그리고 거짓된 품위와 위선적 자선으로 그들의 여린 마음까지 상처를 입혀서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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