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Apr 05. 2021

마음의 잔을 비우기 전에는...

지식과 지혜

한 작은 마을에 지혜로운 현자(賢者)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학식이 높은 교수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지혜로운 분이시여, 저는 세속의 학문만을 추구해왔으니 제게 선생님의 지혜를 나누어주시길 청합니다.”     


그러자 현자는 주전자 가득 찻잎을 넣어 끓이고 우러난 차를 그의 찻잔에 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찻잔이 넘치도록 계속 주전자의 차를 부었어요. 마침내 학자가 참지 못하고 외쳤습니다.    


“찻잔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따르시지요.”    


현자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학자에게 말했습니다.     


“교수님의 마음속에 이미 자신의 견해와 추론이 가득한데, 그 마음의 잔을 비우기 전에 제가 어찌 그것을 채울 수 있겠습니까”    


지혜는 겸허함 속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머리에 담아도 그것을 비우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삶의 도리와 지혜가 있기 마련입니다. 나는 하루하루 일터에서 성실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지적 허영심에 사로잡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이론에만 빠져있던 내 모습을 반성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서양의 이론을 피상적인 지식만으로 섣부르게 떠들던 내 젊은 날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T. S. 엘리엇은 70세가 되던 해에 이렇게 말했죠. “내가 60세를 넘기며 해왔던 모든 일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유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위대한 시인이었고 한 시대의 문학을 이끌던 이론가였습니다. 저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노벨상까지 받았던 그의 또 다른 자만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의 이론을 노트에 적어 이해하려 애쓰던 제게 그의 어처구니없는 언급은 문학적 지평에 대한 새로운 인식인 것은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세상 모든 일을 서푼 어치의 언어로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를 깨달은 그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진정한 지혜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지식과 지혜에 대한 우스개가 생각납니다.     


지식 : 토마토가 과일이 아니고 채소라는 것을 아는 것.

지혜 : 과일 샐러드에 토마토를 넣지 않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그의 반, 나의 전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