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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pr 15. 2021

두 개의 성

더운 여름날,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어린 소년 하나가 무릎을 꿇고 작은 삽으로 모래를 퍼 큰 통에 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변의 평평한 곳에 통을 들어 거꾸로 세우고는 들어 올렸습니다. 형태를 갖춘 모래 탑을 보고 소년은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죠. 오후 내내 그는 탑 주면으로 호를 파고, 성벽으로 만들고, 병뚜껑으로 감시탑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작은 막대기로 다리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몇 시간을 공들여 마침내 바닷가 모래밭에 모래성이 세워졌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차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대도시. 한 남자가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상 위에 서류들이 높이 쌓이고, 업무들을 분장하고, 어깨와 턱에 전화기를 붙이고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능숙하게 숫자를 다루고, 계약서에 서명을 합니다. 그리고 엄청난 이윤이 창출되자 환호합니다. 평생 그는 일을 하겠죠.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예측할 겁니다. 그가 받을 연금은 감시탑이 되고, 이익금은 다리가 될 겁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성이 세워집니다.      


이 두 성을 지은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작은 것들로 거대한 것을 만들었습니다. 무(無)에서 아름다운 유(有)를 창조했습니다. 그들은 근면했고, 그들의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죠.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거기서 끝입니다. 소년은 자신의 성이 종말을 맞이할 것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남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스름이 다가오고 파도가 몰려옵니다. 발밑에 파도가 밀려들자 아이는 팔짝 뛰면서 박수를 칩니다. 파도가 그의 성을 쓸고 가는 순간에 말입니다. 슬픔 따위는 없죠. 두려움도 후회도 없습니다. 놀라지도 않았죠.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아이는 미소를 띠고 아버지의 손을 잡은 채 해변을 떠났습니다.       

화려한 자신의 사무실에 있던 그 남자는 아이만큼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세월의 파도가 그의 성을, 제국을 무너뜨리는 순간 그는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애써 무너지는 그것을 잡으려 버둥거리고 있었죠. 자신이 만든 벽으로 파도를 막아보려 했습니다. 몰려드는 물결을 향해 소리를 질렀어요. “이건 내 성이야!” 하지만 바다는 대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남자도 바다도 그 모래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꿈을 꾸고, 꿈을 이루세요. 하지만 아이의 마음으로 그 꿈을 세워야 합니다. 해가 지고 밀물이 몰려오면 박수를 치세요. 삶의 흐름에 즐거이 작별을 고하고 미소 지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어차피 우린 빈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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