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May 07. 2021

이 무서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전혜린, '무제'

무제

          전혜린     


정말로,     


'이 무서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허공에 꽃씨를 뿌리듯

내 속에서 번식하는 의식.'     


'한 사람 한 사람씩

커다란 죽음 앞에 향불을 피워 놓고

얼굴을 가리고 돌아서는 것은 웬일일까?'     


'땅에서 하늘로 뚫린 비밀의 운하엔

지금은 물이 없고

물이 차기엔

만 년을, 억 년을 기다려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Untitled

        by Chun, Hye-rin     


I wonder,     


‘Where does this fear come from?

Like the flower seeds thrown in the air

Deep inside, my consciousness grows.‘    


‘Why does people turn back hiding their faces

After they burn incense

Before a big death one by one.‘     


‘The secret canal dug from the earth to the sky

Has no water

And we may wait forever and ever

Before it is filled with water.‘     


사는 것이 두려운가요? 무언지 모를 불안감이 늘 당신을 감싸고, 눈을 감은 채 바다로 향하는 널빤지 위를 걷는 것 같은가요?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바다에 빠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발걸음이 무거울 겁니다. 에밀리 디킨슨은 그것을 경험이라 했던가요? 두려움을 통해서 배우는 경험. 허공에 산란(散亂)하는 의식의 씨앗들로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를 배웁니다. 그렇게 세상의 그림자를 배워갑니다.     


삶의 끝은 죽음이지요. 영원한 삶 같은 것은 없습니다. 죽지 않고 늙어가기만 한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갈까요? 그래서 아직 이 땅 위에서 덜 추한 모습일 때 떠나가야 하는 것이죠. 얼굴을 감추고 뒤돌아서서 스며드는 향냄새를 맡으며 알 수 없어 불안한 미지의 세계로 걸음을 옮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죽습니다. 새로운 삶을 위하여 이 날의 생명을 버리고 맙니다. 그리워도 말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그 사이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땅 위가 하늘이라면, 우리가 서서 보지 못하는 발아래 하늘은 하늘이 아닐까요? 보지 못하는 하늘과 땅을 밟고 우리가 서있습니다. 그곳에 물이 없다는 시인의 표현은 너무도 허황합니다. 왜냐면 그곳엔 우리의 눈물이 있고, 내리는 비와, 물처럼 흐르는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궁금합니다. 이 모든 우주의 존재들은 누구의 작품일까요. 그것은 묻지 마세요. 어차피 대답은 들을 수가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시에는 제목이 없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다에게 잊힌 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